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들은 흔히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부유해질 수 있습니까?” 이 질문 속에서 말하는 부유함은 대개 돈이 많고, 집이 넓고, 여유가 있는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부유富有는 지갑의 두께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를 뜻합니다. [담화총사 : 네이버 동영상 2,500개 바로보기]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유만덕富有萬德이라 말합니다. “참으로 부유한 이는 만 가지 덕을 갖춘 사람이다.” 덕이 없는 부유는 오래가지 않는다. 재물은 쌓일 수 있지만, 덕이 없으면 흩어집니다. 말이 거칠고, 사람을 이용하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그 삶에는 늘 불안이 따릅니다. 부처님은 이를 무덕부無德富라 하셨습니다. 겉은 풍족하나, 속은 늘 결핍된 상태입니다. 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을 지탱한다. 덕이란 무엇입니까? - 남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리는 마음 - 손해를 보더라도 도리를 지키는 태도 - 말 한마디를 삼키는 인내 -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여유 - 이 모든 것이 덕입니다. 덕은 통장에 기록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에 남고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덕은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이 역사적 선언의 중심에는 세계불교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 세계법왕이 있었다. 냉전의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반,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분단, 종교 간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일붕 서경보 법왕은 이 시대적 상황 앞에서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불교가 더 이상 사찰과 수행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 사상은 개인의 해탈을 넘어, 인류 공동체를 향해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불교, 침묵이 아닌 선언으로 나아가다 1992년 제정·공포된 세계불교평화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이는 불교가 인류 공동체 앞에 공식적으로 내놓은 평화 선언이며, “전쟁과 폭력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불교의 집단적 의지 표명이었다. 일붕 서경보 법왕은 제정 공포문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천명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개인의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고통받는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 그 가르침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 선언은 이후 세계 각국의 불교 지도자들과 국제 종교·평화 단체들에 깊은 울림을 주었고, 불교가 평화 외교와 인류 윤리의 주체로 등장
법왕청신문 강경희 기자 | 요즘 세상은 빠르고, 판단은 더 빠릅니다. 뉴스를 보아도, 사람을 보아도 우리는 묻기보다 먼저 결론을 냅니다. 그 결론의 끝에는 종종 이런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내가 옳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옛사람들은 이를 한마디로 불렀습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다 쓰는 마음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만 생각하고 해석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마음의 습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괴로워지는 이유는 세상이 불공평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기준을 절대화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사회를 돌아보면 아전인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병처럼 번져 있습니다. 정치는 자기 진영의 논만 적시고, 조직은 성과만 자기 공으로 돌리며, 관계에서는 상처받은 이유는 크게 말하고 상처 준 이유는 작게 말합니다. 모두가 물을 끌어오지만 정작 논두렁은 무너지고, 공동의 밭은 메말라 갑니다. 불교에서는 이 마음을 아집我執이라 부릅니다. ‘나’라는 생각에 집착할수록 사람은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아전인수의 문제는 물이 흐르지 않는 데 있습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듣고, 수많은 다짐을 한다. 그러나 그중 얼마나 많은 말이 마음에 새겨지고, 얼마나 오래 남는가를 돌아보면 대답은 늘 조심스러워진다. 명심불망銘心不忘, 마음에 새겨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이 네 글자는 단순한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이며, 수행자의 자세이며,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약속이다. 불교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깨어 있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고통 앞에서 자비를 선택하고, 욕망 앞에서 절제를 선택하며, 두려움 앞에서 지혜를 선택하겠다는 서원이다. 이 글은 명심불망이라는 한 문장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끝내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작은 등불이 되고자 한다. 銘心不忘은 새길 명銘, 마음 심心, 아닐 불不, 잊을 망忘이다. 마음 깊은 곳에 새겨 두어, 어떤 순간에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마음은 단순한 감정의 그릇이 아니다. 마음은 업이 쌓이는 자리이며, 깨달음이 시작되는 자리다. 그래서 부처님은 늘 “마음을 잘 살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기억하는 대로 살아간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요즘 세상은 빠릅니다. 한 번의 만남으로 판단하고, 한 번의 말로 관계를 정리합니다. 기다림은 낡은 미덕이 되었고, 정성은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알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재능보다도, 지위보다도, 정성에 먼저 문을 연다는 사실을. 그래서 남겨진 말이 있습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란, 세 번이나 초가집을 찾아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핵심은 ‘세 번’이 아니라 ‘돌아감’에 있습니다. 한 번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해도 돌아서며 원망하지 않고, 두 번 찾아가 거절당해도 체면을 세우지 않으며,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하심下心이라 합니다. 마음을 낮추는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법은 높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질 때 스며든다.” 삼고초려는 사람을 모시는 이야기 같지만, 실은 자기 마음을 닦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상대를 탓하고, 세상을 탓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정말로 세 번이나 마음을 다해 두드려 본 적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인연은 한 번의 요청으로 맺어지지 않습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들은 흔히 묻습니다. “왜 내 삶에는 자꾸 어려움이 겹치는가.”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묻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복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화 또한 갑작스러운 불행이 아니라 쌓여온 선택의 그림자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원화소복遠禍召福, 화는 멀리하고 복은 불러들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기도를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로 세우라는 가르침입니다. 원화소복이란, 재앙을 피해 달아나는 요령이 아니라 재앙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업業이라 말합니다. 선한 마음은 선한 결과를 부르고, 흐트러진 마음은 반드시 어지러운 인연을 불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업은 피할 수 없으나, 지을 것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세상은 빠릅니다. 말이 앞서고, 판단이 급하며, 이익이 먼저 나오고 책임은 뒤로 밀립니다. 이때 원화소복은 속도를 늦추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마디 덜 말하고,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마음. 그것이 바로 화를 멀리하는 첫 수행입니다. 복은 특별한 재물이 아닙니다. 밤에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은 깨달음 이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힘을 가르치셨다. 그 힘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수오지심이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되 증오가 아니라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이다. 맹자는 말했다.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이는 도덕을 강요하라는 말이 아니라, 양심이 꺼진 사회는 스스로 무너진다는 경고다. 오늘의 사회를 바라보면 이 수오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잘못을 저질러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짓을 말해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시대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선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데 더 능숙해졌고, 사과해야 할 순간에 변명과 공격으로 자리를 채운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이는 탐욕이나 분노보다 더 깊은 병이다. 부끄러움을 잃은 마음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오지심은 약함이 아니다. 자기 안의 그릇됨을 인정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용기다. 수행이란 결국 이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않는 연습이다. 부처님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하셨다. 남을 속이는 일은 잠시 가능해도, 자기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있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는 이 짧은 고사 속에 오늘 사회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 이말은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는 뜻이다. 작은 사마귀가 자기 힘을 알지 못한 채 거대한 수레를 멈추려 들다, 끝내 깔려버린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늘 지혜 없는 용기를 경계하셨다. 용기는 귀한 덕목이지만, 지혜가 따르지 않는 용기는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칼이 되기 때문이다. 수행 없는 용기는 분노가 되고, 성찰 없는 정의감은 폭력이 된다. 오늘의 사회를 돌아보면 당랑거철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분노가 판단을 대신하고, 감정이 사실을 앞지르며, 자신의 위치와 역량을 헤아리지 않은 채 목소리만 높이는 장면들이 일상이 되었다. 옳고 그름을 말하기에 앞서, 얼마나 깊이 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마음 상태를 아만我慢이라 한다.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는 마음, 세상을 자기 기준 하나로 재단하려는 집착이다. 아만이 커질수록 사람은 스스로를 강하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가장 쉽게 부서지는 상태가 된다. 낮은 곳을 보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넘어짐으로 귀결된다.
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불교 수행에서 말하는 悲智雙修비지쌍수는 자비와 지혜를 동시에 닦는 길이다. 자비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연민은 감정에 머물고, 지혜만 있고 자비가 없으면 통찰은 차가운 판단으로 변한다. 부처님은 이 둘을 나란히 세우지 않으면 수행도, 사회도 곧게 설 수 없다고 보셨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뜻할 것인가, 냉철할 것인가. 편을 들 것인가, 거리를 둘 것인가. 그러나 비지쌍수의 가르침은 말한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순간, 이미 길에서 벗어났다고. 진정한 수행은 마음을 열되 눈을 감지 않고, 통찰하되 마음을 닫지 않는 데 있다. 자비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힘이다. 그러나 자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통을 줄이려는 선의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낳는 경우가 있다. 무엇이 원인인지 보지 못한 채 돕는다면, 문제는 반복된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사태를 구조적으로 보고,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며, 지금의 선행이 미래의 고통을 키우지 않는지 묻는다. 지혜 역시 자비를 떠나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차가운 분석과 정확한 판단이 인간의 얼굴을 잃는 순간, 지혜는 폭력이 된다. 숫자로만 세상을 재단하고,
법왕청신문 강경희 기자 | 이 책은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닙니다. 삶을 정리하는 법을 조용히 건네기 위한 책입니다. 부모를 떠나보낸 이에게는마음을 놓아둘 자리를, 아직 부모 곁에 있는 이에게는미리 생각해볼 시간을 드리고자 합니다. 봉안은 끝이 아니라기도로 이어지는 인연입니다. 이 책은 그 인연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기록입니다. 담화총사는 1편에서 9편까지의 연재를 통해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1편 “왜 봉안은 사찰이어야 하는가?”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 앞에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뿐이다. 그래서 봉안의 장소는 중요하다.그곳이 단순한 시설인지, 아니면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해 진다. 사찰 봉안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불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은 귀의歸依*이며, 기도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이다. 공동묘지나 일반 봉안시설은 ‘보관’을 중심에 둔다. 그러나 사찰은 다르다. 사찰은 기도가 멈추지 않는 공간이다. 누군가 오지 않아도, 스님들의 독경과 향불은 매일 이어진다. 벽사초불정사가 봉안을 사찰 안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봉안은 남은 가족의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초대 법왕 일붕 스님의 기도문 한 줄, 청담 스님의 휘호 한 획, 성철 스님의 법어 한 마디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깨달음의 불씨이자, 존재를 일깨우는 지혜의 언어이다. 고승들의 자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정신은 휘호 한 자 한 획, 법어 한 줄 한 줄 속에 살아 숨 쉬며,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를 밝히는 ‘법의 등불’로 남아 있다. 담화총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보존해 온 2,000여 점의 고승 유물은 단순한 종교적 유품이나 수장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역사, 예술과 수행, 교화와 사상의 정수를 담은 살아 있는 문화재이며, 나아가 세계불교와 인류 정신문화의 가교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특히 초대 법왕 일붕 스님을 비롯해 청담, 성철, 월하, 숭산 스님 등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고승들의 친필, 병풍, 염송집, 법어, 의식용 유물 등은 한국불교사와 정신사, 예술사, 포교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학술적·철학적·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유물의 체계적인 보존과 전시는 한국불교의 세계화와 불교정신의 현대적 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일붕 서경보 법왕의 생애는 단순히 한 승려의 삶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세계불교의 역사이자 인류 평화운동의 여정이었다. 스님은 한 평생을 오로지 불법佛法의 전파와 중생 구제에 바쳤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법회를 열었고, 언어와 문화,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어 오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 원력願力의 결실로, 스님은 기네스북 5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불교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기록 속에서도 찾기 힘든 위대한 족적이었다. 또한 스님은 UN NGO 국제교육자협의회(IAEWP)로부터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차례 연속 추천을 받았다. 이는 종교 지도자를 넘어, 인류 사회 전체가 스님의 헌신과 업적을 인정한 것이며, 그분의 법등法燈이 세계를 밝히는 증거였다. 그러나 모든 생에는 마침표가 있듯, 스님에게도 마지막 날은 다가왔다. 1996년 6월 25일, 스님은 열반에 들었다. 세속의 시간으로는 삶의 종지부였으나, 불법의 광명 속에서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법왕의 몸은 비록 멈추었으나, 그분의 원력과 가르침은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스님은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불법은 세상 속에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1996년 6월 25일,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스님은 세속의 생을 마치고 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스님의 삶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이 남긴 유언과 서원은 오늘의 법왕청을 통해 살아 숨 쉬고 있다. “불법은 세상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길이어야 한다” 스님의 마지막 유훈은 단순한 말씀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교가 사회의 변방에 머무르는 종교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을 살리고 인류 평화를 이루는 실천적 진리여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법왕청의 계승과 실천 스님의 비서실장으로 9년여 동안 곁을 지킨 담화총사는 법왕의 뜻을 이어받아, 『세계일화』 집필과 일대기 정리, 법왕청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그 법맥을 지켜가고 있다. 충북 청주 미원면에 세워진 벽사초불정사僻邪招佛精舍는 스님의 유훈을 구현하는 도량이다. 이곳은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불교 수행·문화예술·추모·봉헌이 어우러진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인권센터, 외교아트센터, 장학사업, 언론 활동을 통해 스님의 사회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 봉사와 장학 사업 법왕청은 지금까지 국제교류전 53차례의 노인복지 행사 및 사회봉사와 230여 명의 장학금 지원을 이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법왕 일붕 서경보 스님의 삶은 불교의 울타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불법은 인류 전체의 것”이라 믿었고, 종교와 종파, 국경의 벽을 뛰어넘어 화합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교황과의 만남이다. 일붕 스님은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친히 염주를 걸어드렸다. 가톨릭의 최고 수장과 불교의 법왕이 합장으로 마주한 이 장면은, 인류 종교사에서 보기 드문 화합의 상징으로 기록되었다. 스님은 이를 ‘세계일화世界一花’라 불렀다. 인종과 언어, 종교와 문화를 넘어 인류 전체를 한 송이 연꽃으로 피워내겠다는 서원이자, 모든 종교가 하나의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교황과의 만남은 단순한 예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불교적 자비와 기독교적 사랑이 손을 맞잡은 순간, 인류 평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스님의 친필 휘호 松風梅月송풍매월은 이 사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솔바람처럼 청정하고, 매화 달빛처럼 고결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할 때, 비로소 세계일화의 꽃이 피어난다는 메시지였다. 일붕 법왕의 발걸음은 이렇게 종교 간의 벽을 허물며, 인류 화합의 길을 밝혀갔다. 송풍매월松風梅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1960년대의 격동은 불교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전쟁과 분열의 그림자가 세계를 뒤덮을 때, 한 스님의 원력은 국경을 넘어 인류를 향했다. 그분이 바로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스님이었다. ‘법왕法王’이란 단순한 직함이 아니다. 이는 불법을 왕도로 삼아,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와 자비의 등불이 되겠다는 서원誓願이다. 마치 용龍이 구름 속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듯, 스님의 즉위는 한국 불교를 넘어 세계 불교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즉위는 곧 선언이었다. “불교는 특정한 민족이나 언어의 소유가 아니다. 부처님의 진리는 모든 인류의 것이며, 평화는 불교가 세상에 내리는 가장 고귀한 공양이다.” 스님은 이 선언을 단지 말로만 남기지 않았다. 세계 53개국의 대표들과 손을 맞잡고, 종교와 사상을 달리하는 이들과도 벽을 허물었다. 그 만남은 서로 다른 색채의 꽃잎들이 한 송이로 피어나는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실현이었다. 일붕 스님의 법왕 즉위는 ‘권위의 자리’가 아니라 ‘책임의 자리’였다.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설파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비를 전하며, 불법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수행자의 서원이자 사상적 결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