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청주 미원의 산자락, 바람이 머물고 구름이 쉬어가는 그 자리에서 하나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그 이름은 벽사초불정사. 이곳은 더 이상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기도만 드리는 공간도, 과거의 전통만을 간직한 장소도 아니다. 지금 이곳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미래세대를 하나로 잇는 살아있는 수행의 도량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웅장한 전각과 정갈한 마당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은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정돈된 자리에 가지런히 놓인 수백 개의 의자들. 그 의자들은 단순한 좌석이 아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 다가올 시간, 그리고 미래세대를 기다리는 ‘비어 있는 약속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15,000그루의 나무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생명의 숨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이 자리에는 약 800여 명의 시민과 내·외빈이 함께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순한 참여 인원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미래를 심는 증인들이었다. 자연을 살리는 것이 곧 수행이다. 벽사초불정사가 선택한 길은 분명하다. 기도만 하는 도량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도량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 놓여 있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환경이 바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 “예전에는 이렇게 했는데”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현재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말이있다. 배 위에서 칼을 떨어뜨린 뒤 그 자리에 표시를 해두고 나중에 그 자리를 찾아 칼을 찾으려 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배는 이미 흘러가고 있다. 칼이 떨어진 곳은 이미 지나가 버렸는데 사람은 표시만 믿고 같은 자리를 찾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상황은 변했는데 생각은 그대로이고 세상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멈춰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변하지 않으려 한다.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옛 방식만 고집하며 지금 이 순간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괴로움이 생긴다. 변하는 세상에 고정된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를 붙잡지 않는다.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 속에서 자신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이 세상은 겉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실상은 어둠 속에 덮여 있다. 사람들은 빛 속에 사는 것 같지만 욕심과 분노, 집착과 어리석음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간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 세상은 무명無明의 어둠 속에 잠겨 있다고. 그렇다면 그 어둠 속에서 누가 저 지혜의 빛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모두가 같은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어떤 이는 아무리 설명해도 깨닫지 못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지혜의 빛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한다. 욕심이 눈을 가리고 집착이 마음을 막으며 어리석음이 자신을 가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화경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깨어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이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날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문은 열려 있지만 스스로 나가지 못하고 익숙한 좁은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몇 마리의 새는 결국 날아오른다. 두려움을 넘어 자신을 벗어나 하늘로 향한다. 그 새들은 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부와 명예, 권력, 그리고 남보다 앞서고 싶은 마음과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르며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바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것들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남가일몽南柯一夢” 남쪽 나뭇가지 아래에서 꾼 한낱 꿈과 같다는 뜻이다. 한때의 부귀영화도 권력도 결국은 꿈처럼 사라진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상無常이라 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흘러가고 사라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영원한 것처럼 붙잡고 놓지 못해 괴로워한다. 성공을 이루어도 불안하고 잃을까 두려워하며 결국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잠시 머무를 뿐이다.” 남가일몽의 가르침은 단순히 허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지나간 것은 이미 꿈이 되었고 다가올 것 또한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진짜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뿐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결과보다 마음을 바라보고 소유보다 내려놓음을 택한다. 가지려 할수록 괴로워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흰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어둠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 그 새는 머뭇거리지 않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땅의 습기와 안개, 바람의 흔들림을 뒤로하고 오직 빛을 향해 날아갑니다. 이 모습은 곧 수행자의 길이며, 깨어난 자의 모습입니다. 법구경의 말씀에 이르기를, “마라와 그의 군대를 처부순 이는 이 세상을 멀리 벗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마라는 단지 외부의 존재가 아닙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집착, 두려움이 모든 것이 곧 우리 마음속의 마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장애를 두려워하지만, 정작 우리를 묶어두는 것은 내부의 번뇌입니다. 수행이란 멀리 있는 어떤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어둠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단지 빛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밝히고, 한 생각을 바르게 세우는 순간, 마라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흰 새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듯, 수행자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날아오르는 용기’입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는 있지만, 날아오르지 못합니다. 익숙한 삶, 익숙한 고통 속에 머물며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하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누구나 배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좋은 것만 배우려고 한다. 훌륭한 사람의 말, 성공한 사람의 삶,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불교의 지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깊다.“他山之石”타산지석, 즉, 다른 산의 돌이라도 내 산의 옥을 가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격언이 아니다. 우리 삶을 바꾸는 수행의 태도를 말해주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보통 남의 잘못을 보면 비판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남을 판단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다르다. 남의 허물을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남의 어리석음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남의 실수를 보며 자신의 길을 바로잡는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말한다.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공부라고. 좋은 사람도 스승이지만 나쁜 사람 또한 스승이다. 칭찬은 나를 기쁘게 하지만 비난은 나를 성장하게 한다. 타산지석의 진정한 의미는 남을 통해 나를 깨닫는 데 있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완벽한 배움도 없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겪는다.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자리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람을 가장 오래 괴롭히는 감정이 있다면 아마 미움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겪으면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원망과 미움이 생겨납니다. 그 감정은 처음에는 작은 그림자처럼 시작되지만, 마음속에서 계속 붙잡고 있으면 점점 커져 결국 삶 전체를 어둡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괴롭혔다.” “저 사람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미움의 화살을 상대에게 향하게 합니다. 그러나 법화경이 전하는 가르침은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미움은 상대를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미 평화를 잃어버립니다. 상대는 이미 그 일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움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일을 계속 떠올리며 스스로 마음을 괴롭힙니다. 마치 무거운 돌을 들고 있으면서 상대에게 던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돌을 들고 있는 동안 가장 먼저 힘들어지는 사람은 바로 돌을 들고 있는 자신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마음을 집착의 고리라고 말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사람을 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사람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보고 있는가. 재물, 지위, 명예는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손쉬운 기준이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하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언제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불교 경전인 『대장엄론경』에는 이와 관련된 깊은 통찰을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한 마을에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안은 선대에는 큰 부자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몰락하여, 그는 가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가난해지자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친척과 친구들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고, 오히려 냉담한 시선으로 그를 대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지 않았다. 그의 형편을 보고 있었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오랜 노력 끝에 그는 큰 부를 이루었고, 몇 년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의 귀향 소식이 전해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를 외면하던 친척과 친구들이 앞다투어 나와 그를 맞이하려 한 것이다. 그는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일부러 누더기 옷을 입고 행렬의 맨 뒤에 섰다. 사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의 마음속에는 때때로 뜨거운 불이 일어납니다. 그 불의 이름이 바로 분노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고, 억울한 일을 겪으면 가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 순간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화가 난다.” 그러나 법화경의 깊은 가르침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진실을 보여 줍니다. 분노는 상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일으키는 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수행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노는 불을 들고 남을 태우려는 것과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대에게 던질 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불을 들고 있는 동안 가장 먼저 타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입니다. 화를 내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평온을 잃습니다. 생각은 흐려지고, 말은 거칠어지며, 행동은 급해집니다. 분노 속에서는 지혜가 사라지고 어리석음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에게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그것은 참된 지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처음에는 작은 불씨처럼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행동, 혹은 작은 오해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우리는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말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좋은 말을 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말을 잘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정한 이해와 소통은 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근원은 언제나 마음에 있다. 불교에서는 이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한다.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인간 관계와 수행의 본질을 꿰뚫는 깊은 가르침이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잠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마음이다.” 제자는 다시 물었다. “말을 잘해야 관계가 좋아지는 것 아닙니까?” 부처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며 답하셨다. “말은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다.” 이 짧은 말씀 속에는 깊은 진리가 담겨 있다. 사람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느낀다. 진심이 담긴 말은 짧아도 깊이 전해지며, 거짓된 말은 아무리 길어도 상대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를 쉽게 경험한다. 어떤 사람은 말이 많지 않아도 곁에 있으면 편안함을 준다.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이 이미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
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대한불교조계종 도리사는 지난 12일 도리사 선센터 건립 현장에서 ‘도리사 시민치유 선센터’ 착공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황명석 경상북도 행정부지사와 김장호 구미시장을 비롯해 박교상 구미시의회 의장, 도·시의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해 선센터 건립의 첫 삽을 뜨는 뜻깊은 자리를 함께했다. 특히 선센터 설계를 맡은 세계적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건축사사무소 대표와 구미산업화역사관 건립에 관심을 보여온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을 대신해 자료관리과장이 참석해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기원했다. 행사는 산신제를 시작으로 주지 묘원스님의 사업 추진 경과보고, 승효상 대표의 설계 방향 설명, 회주 법등스님의 기념사에 이어 시삽식 순으로 진행됐다. 도리사 시민치유 선센터는 총사업비 50억 원(국비 15억 원, 도비 9억 원, 시비 21억 원, 자부담 5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121㎡ 규모로 조성되며, 1인실부터 20인실까지 다양한 형태의 명상실과 안내센터 등 편의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준공 목표 시점은 2027년 5월이다. 선센터가 완공되면 스트레스와 일상 피로에 지친 시민들에게 체계적인 명상 프로그램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마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아전인수란 말 그대로 “내 논에 물을 끌어들인다”는 뜻입니다. 물길을 자기 논으로만 돌려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 곧 모든 일을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작은 욕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마음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흐리게 하고 세상을 좁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아전인수의 마음에는 나만 생각하는 좁은 시야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지나치면 세상은 서로를 돕는 공동의 터전이 아니라, 서로의 몫을 빼앗는 경쟁의 자리로 변하고 맙니다. 물길을 자기 논으로만 돌리면 다른 논은 마르게 됩니다. 결국 그 마른 논은 다시 세상의 균형을 깨뜨려 자신에게도 어려움으로 돌아옵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을 아상我相, 곧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집착이라 말합니다. 나의 이익, 나의 체면, 나의 주장만을 앞세우면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흐려집니다. 그렇게 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조차도 진실이 아니라 자기 이익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세상을 가장 깊이 움직이는 말이 있습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정복되지 않는다. 미움은 오직 사랑으로써만 정복된다. 이것이 영원한 진리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법칙을 밝히는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모든 갈등과 다툼을 돌아보면 이 말씀이 얼마나 깊은 진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미움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의 길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사람은 쉽게 미움을 품습니다. 미움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 미움은 점점 커집니다. 처음에는 작은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가 되고, 원망이 되고, 결국 관계를 끊어버리는 독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나를 미워하면 나도 미워하겠다.” “나에게 상처를 주면 나도 갚겠다.” 그러나 이 길은 끝이 없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불을 불로 끄려고 하면 불은 더 크게 타오릅니다.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미움을 끊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비慈悲입니다. 자비란 상대를 무조건 감싸는 마음이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란,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욱 힘을 보태어 더 큰 성취를 이루도록 격려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채찍을 벌로 생각합니다. 잘못했을 때 맞는 것이 채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채찍은 꾸짖음이 아니라 격려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미 힘차게 달리는 말에게 “더 힘을 내라” 하고 등을 두드려 주는 것입니다. 불교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수행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흔들리고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음이 맑아지고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때가 주마가편의 순간입니다. 이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스승은 말합니다. “멈추지 말아라.” “조금 더 정진하라.” 그 격려의 한마디가 사람을 더 큰 깨달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덕목 가운데 하나를 정진精進이라고 하셨습니다. 정진이란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바른 길을 걷고 있을 때 그 길을 꾸준히 이어가는 힘입니다. 한 번의 노력으로 깨달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물 한 방울이 돌을 뚫는 것처럼 작은 정진이 마음을 밝히는
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세상에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마귀 한 마리가 달려오는 수레를 막아서는 모습에서 나온 말입니다. 작은 사마귀가 큰 수레를 향해 두 팔을 들고 “내가 막겠다” 하고 버티는 모습입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수레는 멈추지 않고 사마귀는 그 앞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힘을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덤비는 일을 당랑거철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불교에서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문제는 용기가 아니라 지혜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맞서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물러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싸움이 이겨야 할 싸움은 아닙니다. 모든 말이 해야 할 말은 아닙니다. 모든 길이 가야 할 길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에게 지혜를 먼저 배우라 하셨습니다. 힘만 가지고 세상을 살면 다툼이 생기고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살면 길이 보입니다. 사람이 화가 나면 사마귀처럼 됩니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맞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보면 막아야 할 것과 비켜야 할 것이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의 눈입니다. 세상에는 큰 수레 같은 일이 많습니다. 권력도 있고 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