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 비구들에게 자비심慈悲心에 대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예리한 칼 한 자루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지나가던 한 사람이 그 칼을 보고 ‘나는 이 칼을 활처럼 휘게 할 수 있다’고 하며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였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러자 한 비구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날카로운 칼을 구부린다거나 휘게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억지로 그렇게 하려 한다면, 결국 자신이 그 칼에 상처를 입고 말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자비심을 익히고, 반복하여 수습하며,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한다면, 설령 누군가가 칼을 엿가락처럼 구부리려 해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자비심 속에 머물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귀신이 나타난다 하여도,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동요하지 않으리라. 그때의 마음은 오직 너 자신만이 움직일 수 있는, 흔들림 없는 네 마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비심의 부드럽고 따뜻한 정서를 알고 있다. 그 자비심은 개인을 넘어서 가정으로, 사회로, 국가와 세계로 확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글, 김용규 삼장전법사 | “만물의 영화와 시듦에도 저마다의 시詩가 있다.” 이 짧은 한 구절 안에, 자연과 인생, 그리고 세상살이에 대한 불교적 통찰이 응축되어 있다. 자연은 시들어야 다시 피어난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진다. 이 단순한 자연의 흐름 속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살아 숨쉰다. 꽃은 피기 위해 지고, 지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시듦은 다음 생명의 순환을 품고 있다. 세속에서는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눈다. 그러나 불교는 묻는다. “영榮만이 삶인가? 고枯는 실패인가?” 삶의 진리는 언제나 ‘무상’의 법法 위에 서 있다. 영화로움도 시듦도 모두 ‘변화하는 과정’일 뿐, 본질은 아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 속에는 한 편의 시가 깃들어 있다. 시들어도 인생은 시詩입니다 한 청년이 낙방 후 말했다. “제 인생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되묻고 싶었다. “끝이 아니라 쉼표입니다. 시 한 편이 완성되기 위해 중간 중간 침묵이 필요하듯, 지금 당신은 새로운 문장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노인의 손등에는 주름이 있고, 노동자의 손에는 굳은살이 있다. 그 주름과 굳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모 자식 간의 인연도 전생에 수없는 공양을 올린 결과다.” 이는 인과경因果經이 전하는 대표적인 가르침이다. 단순한 혈연 관계가 아닌, 전생의 업력과 선연善緣의 결실로 맺어진 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대표 경전 중 하나인 인과경은 우리가 이 생에서 겪는 기쁨과 고통, 만남과 이별이 모두 과거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족'은 전생의 깊은 인연이 가장 진하게 현현된 삶의 관계로 주목된다. 일정스님은 최근 법문을 통해 “가족은 업을 갚고 복을 짓는 최초의 도량”이라며, 불자들이 수행의 시작을 멀리서 찾지 말고, 가족 안에서부터 자비심과 지혜를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에게 공경을 다한 이는 자식으로부터 효를 받게 되며, 부부간에 믿음을 지킨 이는 다음 생에서도 좋은 인연을 맺게 된다”며, 인과경의 내용을 인용했다.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와 형제자매 간에 생기는 갈등이나 애착, 불화 또한 과거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를 바로 보고 선한 업으로 전환해야 다음 생에도 평화로운 인연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절에 가지 않아도, 가정이 도량이고 가족이 스승이며 도반이다.” 이 말은 수행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선가禪家의 깊은 가르침인 “支度無難 本來無一物(지도무난, 본래무일물)”이라는 선어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갖출 것도 어려울 것 없고,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무엇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깨끗이 하려면, 많은 공부와 고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 부족하니, 더 닦아야 하리라.” 하지만 선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선은 말합니다. “이미 너는 갖추고 있다. 다만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에 온갖 생각과 망상이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스스로 무거워지고, 멀리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지도무난이라 합니다. 도道를 이루기 위해 어려운 장비나 격식,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마음을 덮는 구름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래무일물이라 말합니다.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진리는 얻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 마음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욕망도, 분노도, 미움도…모두는 인연 따라 생긴 거품과 같을 뿐, 실체가 없습니다. 비유 하자면, .깨달음은 맑은 하늘과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세상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담화총사가 정리한 일붕 큰스님의 생애 이야기다. 한 알 옥구슬에 담긴 전생의 인연과, 그 인연이 이끈 수행과 가르침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붕 스님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일대기를 넘어 인류 보편의 자비와 평화를 향한 여정으로 펼쳐진다. 이제, 그 길 위에서 간추린 글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1장. 옥구슬이 전해지다. 한라산에서 온 사자使者 1914년 제주. 봄기운이 실려오는 밤, 한 여인이 신비한 꿈을 꾼다. 백발노승이 한라산 정상을 타고 내려오더니, 빛나는 옥구슬을 건넨다. “삼장전인三藏傳人”이라 새겨진 옥. "이 아이는 장차 삼장을 전할 자니, 부디 소중히 간직하시오.“ 다음 날, 그녀의 남편은 말한다. “이건 태몽일세.” 그리고 1년 후, 제주 서귀포의 도순동, 천혜의 자연 속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집안은 명문 이천 서씨, 할아버지는 옛 제주 목사의 후손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경보京保, 빛나는 피부와 고운 이목구비. 집안은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제2장. 고기를 놓아주던 소년 경보는 자비로운 아이였다. 친구들이 개구리를 돌로 때릴 때, 그는 말렸다. “생명을 죽이면 벌을 받는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삶을 담화총사가 새롭게 정리하여 엮은 연재물입니다. 한 알의 옥구슬처럼 맑은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일붕 스님의 생애는, 단순한 승려의 전기가 아니라 인류의 평화와 자비의 이상을 실현해 간 수행자의 서사입니다. 정진과 배움, 고난과 자각, 그리고 세계를 향한 가르침까지...이 이야기에는 대한불교의 혼과 세계불교의 미래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일화』 제3편을 통해, 붕새처럼 높이 날기 위한 준비와 그 도약의 순간들을 따라가며 다시 그 길을 펼쳐 봅니다. 시간을 넘어선 만남과 깨달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제9장. 비상(飛上)을 위한 붕새의 날갯짓 1935년 가을, 21세의 청년 경보는 전진응 강백의 제자로서 불학佛學의 길을 따라 전북 완주 위봉사로 향했다. 밤이면 호롱불 아래 경전을 펼치고, 낮이면 강의와 수행에 정진하던 어느 날, 그는 특별한 꿈을 꾸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찬란한 섬광이 번쩍이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날개를 펼친 새가 나타났다. 그 새는 붕새였다. 『장자』에 나오는 붕새는 구만리 창공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전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담화총사가 정리한 일붕 큰스님의 생애 이야기다. 한 알 옥구슬에 담긴 전생의 인연과, 그 인연이 이끈 수행과 가르침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붕 스님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일대기를 넘어 인류 보편의 자비와 평화를 향한 여정으로 펼쳐진다. 이제, 그 길 위에서 간추린 글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2편 제7장. 결혼에 이어 출가 일붕 스님, 속명 서경보는 열아홉에 장가를 들었다. 이는 오직 손자의 혼례를 보고 세상을 뜨고자 했던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효심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혼은 그에게 속세의 집착이 아니라 수행의 각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경보는 불심을 품고 수도의 길을 꿈꾸었고, 결국 일곱 차례 가출 끝에 마침내 출가를 허락받았다. 19세, 제주 산방굴사 강혜월 스님을 찾아가 삭발을 받으며 본격적인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법명은 '회암晦庵'. 출가 직후부터 그는 한라산 법정사에서 참선에 정진했고,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철저히 익히며 염불과 예식에 열중했다. 불교 경전인 『팔상록』과 『서유기』는 그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매일매일 고된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계일화』 제4편을 펴내며... 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정리한 연재 기록입니다.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맑고 깊은 행적, 그리고 한 시대를 초월한 포교와 수행의 여정은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 한국불교의 정수이자 세계불교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번 제4편에서는 삼장법사로서의 인가를 받던 역사적 순간부터, 세계를 향해 붕새처럼 비상하던 미국 포교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따라갑니다. 이 길 위에는 ‘불법은 국경이 없고, 자비는 인류 모두를 향해야 한다’는 일붕 큰스님의 신념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일화』는 이제 다시, 그 위대한 발걸음을 따라 여러분과 함께 걷고자 합니다. 진리의 등불은 멈추지 않고, 자비의 바람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이제 제4편의 문을 엽니다. 제11장. 삼장의 옥함을 열다...최초의 삼장법사 11-1. 경·율·논에 통달한 자, 삼장법사의 칭호를 받다 1962년 5월 9일, 영국을 떠나 홍콩을 거쳐 자유중국에 도착한 일붕 스님은 9일간의 불교 강연 일정을 소화하며 대중들과 교감을 나누었다. 강연이 마무리된 어느 날, 중국불교총회 이사장이자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기도는 천년의 향으로 피어납니다.” 천년의뜰 千年의뜰...벽사초불정사僻邪招佛精舍(불정사佛精舍) 기억은 향이 되어 퍼지고, 사랑은 불빛이 되어 이어집니다. 고인을 위한 품격 있는 마지막 인사. 그 이름이 잊히지 않고, 불심과 함께 천년을 살아 숨 쉬는 공간. 천년향화지지 千年香火之地 삶과 죽음, 이별과 기억의 경계를 따뜻하게 감싸는 불교적 안식처 ‘천년의뜰’에서 당신의 사랑은 다시 피어납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계일화』 제5편을 펴내며...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정리한 연재 기록입니다.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맑고 깊은 행적, 그리고 한 시대를 초월한 포교와 수행의 여정은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 한국불교의 정수이자 세계불교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번 제5편에서는, 홍선의 정신으로 민족의 가슴에 자주와 평화를 새기며 호국불교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스님의 가르침과, 미국에서 펼쳐진 세 가지 기적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습니다. 나라와 민족보다 앞선 종교는 없다는 굳은 신념 아래, 스님은 전국을 누비며 참선과 자비를 바탕으로 청소년에게는 올곧은 뜻을, 국민에게는 불굴의 정신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땅에서는 신통과 자비가 어우러진 놀라운 체험들을 통해 세계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인류 불법의 보편성을 몸소 실현해 나갔습니다. 『세계일화』는 이제 다시, 그 위대한 발걸음을 따라 여러분과 함께 걷고자 합니다. 진리의 등불은 멈추지 않고, 자비의 바람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이제 제5편의 문을 엽니다. 제13장. 호국불교의 깃발을 들다. 홍선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다. 1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를 등불 삼고自燈明, 진리를 등불 삼아法燈明 살아가라.” 이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모든 존재에게 주어진 최후의 유언이자, 수행자에게 있어 삶의 나침반과 같은 가르침입니다. 흔들리는 세상, 꺼져가는 마음의 불빛으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SNS의 알고리즘이 감정을 지배하고, 타인의 삶을 기준 삼아 스스로를 판단하며, 외적인 성공에 목숨을 거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조명 아래, 사람들의 마음속 등불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존재가 성적에 달렸다고 믿고, 직장인은 타인의 평가에 따라 자존감을 잃고, 노인은 외로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묻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잃어가는 시대에, 부처님의 자등명自燈明은 강력한 경종입니다. 자등명自燈明이란 내 안의 주인을 다시 찾으라 “자등명”이란, 나를 주체로 삼아 스스로를 밝히는 수행을 뜻합니다. 어둠이 밀려올수록 바깥의 빛을 좇기보다는 내면의 등불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 등불은 단단한 신념이기도 하고, 수행에서 다듬은 통찰이기도 하며, 자기 자신을 진실되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정리한 연재 기록입니다. 한 알 옥구슬처럼 맑은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스님의 생애는, 단순한 승려의 전기를 넘어 인류 공동체를 향한 자비와 평화의 여정으로 펼쳐집니다. 이번 제6편에서는, 일붕 스님께서 세계불교도우의회 제17차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불교 세계화의 중심에 한국을 세운 순간, 그리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전무후무한 박사학위 126개의 지성적 위업을 조명합니다. 서울대회는 단지 종교적 행사가 아니라, 민족의 자긍심을 세계에 알리는 정신문화 외교의 대축제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박사 기록은 진리를 향한 지혜의 탑을 쌓아올린 수행자의 증명이었습니다. "불법은 국경이 없고, 자비는 인류를 향해야 한다"는 스님의 신념은 이 두 장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세계일화』는 이제 다시, 그 찬란한 여정을 따라 걷습니다. 진리의 등불은 멈추지 않고, 자비의 바람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이제, 제6편의 문을 엽니다. 제15장. 세계불교를 서울에 모으다. 불교 올림픽, 제17차 세계불교도대회 서울 개최의 감격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옛날, 어느 깊은 산중에 가피암 이라는 작은 절이 있었습니다. 절 앞에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선 고요한 못이 있었지요. 맑은 날이면 그 물에 구름이 비치고, 바람이 불면 연잎이 잔잔히 흔들리는, 그야말로 세속의 번뇌를 잊게 해주는 청정도량이었다. 그 절에는 나이 지긋한 일정 스님이 살고 계셨다. 스님은 이따금 동네 아이들이나 방황하는 나그네들을 불러 차를 내어주시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법문을 들려주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뒤흔들릴 듯한 큰 폭풍이 닥쳤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고, 바람은 산허리를 넘어 절의 기왓장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밥상도 엎어진 채로 대피했고, 어떤 이는 소중한 집을 잃었다. 절의 못가 역시 망가졌고, 아름답던 연꽃도 뿌리째 뽑혔다. 사람들의 얼굴엔 망연자실함이 가득했고,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절에 피난 온 한 젊은이가 노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저 연꽃도 뽑혀 나가고, 절도 망가지고, 사람들은 울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하늘은 이렇게 무심할까?” 일정스님은 조용히 못가로 나가셔서, 떨어진 연잎 하나를 주워들고 말씀하셨다. “저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죽염 제조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 있다. 경방원 죽염의 최동순 대표는 최근 세계 최초로 5,000도 초고온 황송죽염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을 마친 뒤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에 돌입하였다. 그의 오랜 연구와 헌신은 죽염의 전통적 제조 방식을 뛰어넘어, 과학과 기술이 융합된 건강 혁신의 결정체로 이어졌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명인연합회로부터 ‘5,000도 죽염 명인’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이제 죽염은 그의 손을 통해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인류 건강과 치유를 위한 핵심 소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 위대한 도전과 성취의 여정을, 아래 칼럼을 통해 함께 만나보자. 인류의 식생활과 건강에 필수적인 존재, 바로 소금이다. 그러나 이제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닌, 면역과 균형, 치유를 위한 기능성 건강소재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중심에 선 것이 바로 죽염이며, 이 죽염의 기술적 정점에는 경방원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5,000도 초고온 죽염이 있다. 죽염은 대나무 통에 천일염을 넣고 황토로 밀봉한 후 소나무 장작불로 반복 소성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된다. 이러한 방식은 중금속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글, 청운 삼장전법사 |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겉보기에는 풍요롭지만, 보이지 않는 어둠을 안고 있다. 물질은 넘쳐나지만 마음은 고립되어 있고,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지식은 넘치지만, 지혜와 연민은 희소한 시대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되묻는다. “과연 누가 우리를 진심으로 이끌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 우리는 조사祖師의 존재와 증도證道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조사란 누구인가? 깨달음을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 불교에서 말하는 조사는 단순한 계보의 계승자가 아니다.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 그리고 그 깨달음을 자비와 광명으로 전한 존재이다. 조사의 증도는 머리로만 얻은 앎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실천되고 증명되는 깨달음이다. 말로 가르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교리의 반복보다 마음의 공감으로 중생과 마주하는 삶, 바로 그것이 증도의 길이다. 자비는 가장 낮은 자리로 향하는 실천이다. 불교 수행의 핵심은 자비이며, 진정한 조사는 자비심을 가장 낮은 자리로 이끄는 사람이다. 한 선방의 원로 스님은 자신의 정진보다 먼저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공양을 내주고, 고통 속에 방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