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담화총사가 정리한 일붕 큰스님의 생애 이야기다. 한 알 옥구슬에 담긴 전생의 인연과, 그 인연이 이끈 수행과 가르침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붕 스님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일대기를 넘어 인류 보편의 자비와 평화를 향한 여정으로 펼쳐진다. 이제, 그 길 위에서 간추린 글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2편

제7장. 결혼에 이어 출가
일붕 스님, 속명 서경보는 열아홉에 장가를 들었다. 이는 오직 손자의 혼례를 보고 세상을 뜨고자 했던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효심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혼은 그에게 속세의 집착이 아니라 수행의 각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경보는 불심을 품고 수도의 길을 꿈꾸었고, 결국 일곱 차례 가출 끝에 마침내 출가를 허락받았다.
19세, 제주 산방굴사 강혜월 스님을 찾아가 삭발을 받으며 본격적인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법명은 '회암晦庵'. 출가 직후부터 그는 한라산 법정사에서 참선에 정진했고,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철저히 익히며 염불과 예식에 열중했다. 불교 경전인 『팔상록』과 『서유기』는 그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매일매일 고된 수행 속에서도 그는 더욱 맑아져 갔다.
출가 1년 후, 그는 결심한다. “나는 단지 스님이 되기 위해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와 지혜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육지로 떠나기 전, 그는 속가를 찾아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어머니는 눈물로, 할아버지는 격려로, 아버지는 무언의 신뢰로 그를 배웅했다. 이별의 순간, 그는 부인에게 『팔상록』 한 권을 건네며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리시오. 나는 더 큰 진리를 향해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제8장. 큰 스승을 찾아서
1933년 10월, 경보 스님은 전남 구례 화엄사로 향했다. 진진응 강백이라는 고승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제주를 떠나 여수로 가는 목선은 거센 풍랑에 휘청였고, 승객들은 절망에 휩싸였다. 이때 경보 스님은 자신의 전 재산이 든 바랑을 가장 먼저 바다에 던지며 외쳤다.
“짐을 버리십시오! 지금은 목숨이 먼저입니다!”
승객들은 그의 용기와 결단에 감동하여 하나둘 짐을 버렸고, 목선은 마침내 여수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경보 스님은 가난한 승객들을 데리고 여관에 묵으며 숙식을 제공하고, 불법을 전했다.
화엄사에 도착한 그는 누더기 차림으로 수행에 들어갔다. 사미과와 사집과가 없었기에 염불과 예식을 익히는 데 집중했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선방 생활은 고되었고, 몸은 지쳤지만 그는 꿋꿋이 견뎠다.

그를 묵묵히 지켜보며 도운 이는 묵언 수행자인 순조 대사였다. 말 없이 손짓과 눈빛으로 선 공부를 가르쳐 준 은사와의 인연은 그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혹독한 겨울을 넘긴 후, 그는 마침내 전진응 강백의 문하에서 『화엄경』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초급반 없이 곧장 대학·대학원 과정에 해당하는 경전을 접하게 되었지만, 그는 유학을 통해 다져진 탄탄한 학문 실력과 강한 의지로 이를 극복해 나갔다. 전진응 강백은 경보 스님의 기개와 총명함에 감탄하며, 그에게 더 큰 가르침을 전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회암 스님은, 다시는 물러서지 않을 세계 불법의 큰길을 향해, 진정한 붕새처럼 날아오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다음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