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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청운법사의 “지금 우리 시대가 바라는 조사祖師의 길”

- 자비로 이끌고, 광명으로 증도하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글, 청운 삼장전법사 |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겉보기에는 풍요롭지만, 보이지 않는 어둠을 안고 있다. 물질은 넘쳐나지만 마음은 고립되어 있고,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지식은 넘치지만, 지혜와 연민은 희소한 시대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되묻는다. “과연 누가 우리를 진심으로 이끌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 우리는 조사祖師의 존재와 증도證道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조사란 누구인가? 깨달음을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 불교에서 말하는 조사는 단순한 계보의 계승자가 아니다.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 그리고 그 깨달음을 자비와 광명으로 전한 존재이다.

 

조사의 증도는 머리로만 얻은 앎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실천되고 증명되는 깨달음이다. 말로 가르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교리의 반복보다 마음의 공감으로 중생과 마주하는 삶, 바로 그것이 증도의 길이다.

 

자비는 가장 낮은 자리로 향하는 실천이다. 불교 수행의 핵심은 자비이며, 진정한 조사는 자비심을 가장 낮은 자리로 이끄는 사람이다. 한 선방의 원로 스님은 자신의 정진보다 먼저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공양을 내주고, 고통 속에 방황하는 청년들과 밤새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깨달음은 앉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고통받는 이 곁으로 가는 것이다.” 지켜보는 것이 아닌, 함께 아파하고 움직이는 것이 자비의 증도이다. 광명은 단지 지식이 아닌, 어둠을 밝히는 빛 ‘광명’은 깨달음의 상징이지만, 그 본질은 나를 넘어 타인을 비추는 빛이다.

 

청소년 범죄 상담에 헌신하는 한 수행자는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마음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들이 스스로 울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이것이 바로 광명의 나눔이다. 어둠 속에 있는 이에게 ‘당신 안에도 불빛이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용기, 그것이 조사로서의 실천이다.

 

증도는 계율이 아니라, ‘믿고 따를 수 있는 삶’이다 조사의 증도는 선방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의 골목에서, 공장과 병원, 교도소의 울타리 안에서 삶의 자리마다 중생과 마주하는 순간에 비로소 증명된다.

 

불자들이 자주 묻는다. “스님, 우리는 왜 자꾸 무너집니까?” 나는 이렇게 답한다. “무너지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함께 일어서는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오늘날의 조사입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조사로 살아가야 한다

 

이 시대는 한 명의 스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두가 ‘소조사小祖師’가 되어야 한다. 가정을 이끄는 부모,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는 선생님, 묵묵히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 그들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광명을 전하는 스승이 될 수 있다. 불교는 고요한 깨달음의 종교이지만, 동시에 깨어 있는 실천의 종교이기도 하다. 스승의 길은 살아내는 길이다

 

조사는 멀리 있는 성인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등을 들고 걷는 사람, 침묵 속에서도 온기를 전하는 사람, 넘어진 이 곁에 무릎을 꿇고 등을 내주는 사람. 그가 곧 조사이며, 그가 걷는 길이 바로 증도의 길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자비를 품고, 광명을 나누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 곳곳에 조사의 숨결과 실천이 다시 피어나기를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