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자 여러분과 함께 법의 향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법의 주제는 “무시겁래無始劫來”, 곧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윤회의 흐름입니다. 1. 무시겁래란 무엇인가? “무시無始”란 시작이 없다는 뜻이며, “겁劫”이란 불가에서 말하는 매우 긴 시간 단위를 의미합니다. “무시겁래”란 곧 우리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먼 옛적부터 생사윤회를 되풀이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생이 처음이 아니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무시겁래로부터 수없는 몸을 받아, 부모를 바꾸고 이름을 달리하며 생사를 거듭해 왔습니다. 2. 윤회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무시겁래 동안 업業을 짓고, 그 업에 따라 생사를 반복해 왔습니다. 때론 천상에, 때론 인간 세상에, 때론 축생계나 지옥계에 이르기까지 번뇌와 무명을 따라 흐르는 바람에 실려 흘러왔습니다. 무시겁래라 하여 시작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번뇌도 깊고 뿌리도 깊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끝없는 윤회 속에서도 부처의 씨앗, 즉 불성佛性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3. 무시겁래의 자각은 수
법왕청신문 이준석 기자 |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즉 원인과 결과의 도리를 무엇보다 중히 여깁니다. 선을 행하면 복이 오고, 악을 행하면 화가 따른다는 이 진리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입니다. 이 인과의 법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으로써 중생에게 전해주신 우주의 진실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책임을 회피하며, 권력을 악용해 자신만의 부를 쌓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탕주의, 즉 노력 없이 한 번에 큰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으며, 종교마저도 그 흐름에 휩쓸려 권선징악의 정신을 저버리는 일이 빈번합니다. 나라가 망하려면, 그 나라의 종교부터 타락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종교가 곧 도덕의 뿌리요, 공동체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타락하고, 불자가 인과의 법을 무시하며 탐진치貪瞋癡에 휩쓸릴 때, 사회는 더 큰 혼란과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며, 마음이 바르면 말과 행동이 바르게 된다.” 우리의 삶이 어지러운 이유는 사회 구조가 아니라, 마음이 흐트러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삿되면 법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의 법문은 거룩하신 부처님 전에 귀의하옵고, 법의 향기 속에 함께하신 불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인사 올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배우고자 하는 말씀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끄는 궁극의 경지, 곧 열반적정涅槃寂靜입니다. 열반涅槃이란 무엇인가? ‘열반’은 산스크리트어 Nirvāṇa의 번역어로, 본래의 뜻은 “불을 끄다”입니다. 이 불은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 곧 삼독三毒의 불길을 말합니다. 우리 중생은 이 불길에 휘말려 괴로움 속에 살아갑니다. 열반이란 이러한 번뇌의 불을 끄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죽음 이후에 도달하는 장소가 아니라,집착이 사라진 마음의 경지이며, 고통과 두려움이 없는 진정한 자유입니다. 적정寂靜이란 무엇인가? ‘적寂’은 고요함을 뜻하고, ‘정靜’은 흔들림 없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적정은 단지 소리 없는 고요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완전한 침묵,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온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소란을 피하여 외적인 고요를 찾지만, 부처님께서는 바깥이 아니라 마음속의 정적을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 마음의 침묵이 곧 ‘적정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인연이 있고, 그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인연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중자비恩重慈悲의 인연입니다. ‘은중恩重’이란 무엇입니까? 은혜는 ‘가볍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무겁고, 깊으며, 마음을 무릎 꿇게 합니다.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부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을 존재하게 하고, 방황하지 않도록 길을 밝혀주는 근본의 은혜입니다. 불설부모은중경에서는 부모의 은혜는 열 가지로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애태우며 기르시고,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시며, 온 마음으로 보호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법문으로 인도한 스승의 은혜, 깨달음으로 이끌어주신 부처님의 은혜도 그러합니다. 자비慈悲’란 무엇입니까? 자慈는 즐거움을 주는 사랑이며, 비悲는 고통을 덜어주는 연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무명을 걷어내고 고통을 뽑아내어 영원한 행복을 주시려는 자비의 화신이십니다. 그 자비는 조건이 없고, 차별이 없으며,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제도하고자 오랜 세월을 보살로 살아가신 대원(大願)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자비는 단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행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우리는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 설하신 위대한 수행의 가르침, 사무량심四無量心 가운데, 그 본체인 자비희사慈悲喜捨를 함께 공부하고자 합니다. 사무량심이란 말 그대로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은 네 가지 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마음이며, 이것은 곧 부처님의 마음이자 보살의 삶의 방식입니다. 첫째, 자慈는 자애입니다. “자심능여락慈心能與樂”이라 하였으니, 자의 마음은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그 존재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축원하는 것이 자애입니다. 자애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시작하지만, 수행이 깊어질수록 친한 사람, 싫은 사람, 낯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중생에게 확장되어야 합니다. 자애는 선택이 아니라 무차별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둘째, 비悲는 연민입니다. “비심능발고悲心能拔苦”라 하였듯, 비는 중생의 고통을 없애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연민은 연약한 감정이 아닙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 괴로움을 대신 짊어지고자 하는 힘 있는 마음입니다. 진정한 비심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행동하는 자비로 나타납니다. 불쌍하다 여기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어느 날, 한 부자가 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하인에게 당부했다. “문단속을 잘 하고, 나귀와 밧줄도 잘 살피도록 하라.” 주인이 떠난 뒤, 이웃의 친구가 와서 광대놀이를 보러 가자고 하인을 불렀다. 하인은 나귀를 밧줄로 문에 묶어두고는 친구와 함께 외출하였다. 그가 떠난 사이, 도둑이 들이닥쳐 집 안의 값진 물건들을 모조리 훔쳐 달아났다. 며칠 후, 주인이 돌아왔다. 집 안을 둘러보니 귀중한 물건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는 하인을 불러 물었다. “이 많은 귀중품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 하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주인께서는 저에게 문과 나귀, 그리고 밧줄만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제 책임이 아닙니다.” 주인은 하인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말하였다. “내가 문을 잘 지키라 한 것은 집 안의 보물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제 그것들을 모두 잃었으니, 문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리고 너 또한 이 집에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떠나거라.” 이는 인간이 태어난 이상 언젠가 죽게 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욕에 얽매여 스스로를 잃는 모습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가르치셨다. “감각의 문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상은 이윤을 좇는 냉혹한 시장의 법칙으로 굴러갑니다. 그 안에서 ‘정직’과 ‘양심’은 종종 철없는 자들의 몽상처럼 치부되며, 현실을 모르는 패배자의 넋두리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마음이 순결하면 그 행위도 순결하니라.” 속일 수 있는 것은 세상일지언정, 자기 마음의 거울은 속이지 못하는 법. 그 거울은 모든 허위와 타협 앞에 상처를 입고, 그 상처는 곪아 결국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이치를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상처를 감각 없이 덮고 살아갑니다. 무뎌진 살처럼, 그들의 마음도 점차 메말라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이들...그들은 날 선 진실의 칼날 앞에서 피 흘리며 살아갑니다. 그 고통은 점차 마음을 잠식하고, 삶의 의욕마저 갉아먹는 암세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세상의 이치에 억지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정견(正見)’의 눈으로 그 이치를 관조(觀照)해야 합니다. 진리는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온전하게, 다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거룩한 삼보에 귀의하옵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대중께 부처님의 가피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을 보면, 사람마다 믿는 신이 다르고, 기도하는 말이 다르며, 부르는 이름도 다릅니다. 어떤 이는 “하느님”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부처님”이라 부르며, 또 어떤 이는 종교 없이도 고요한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대중이여, 그 다름 속에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화두, “동애이언同愛異言”입니다. 믿음의 언어는 달라도, 사랑의 손길은 같다는 뜻입니다. 언어는 달라도 배고픈 자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를 건네는 마음, 외로운 이의 손을 잡아주는 마음, 그것은 모두 하나의 자비심에서 나옵니다. 그 마음 앞에서는 종교도, 이념도, 교리도 한 걸음 물러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자도, 죄인도, 출가자도, 재가자도 모두가 불성을 지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불성은 자비이고, 자비는 실천이며, 실천은 곧 나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행한다는 것은 많이 알고 많이 외우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고통 속에 있는 이를 외면하지 않는 일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수많은 이
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세계를 향해 열린 불심佛心, 그 중심에는 한 스님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평화의 길이 있었다. 한국 불교의 세계화와 세계불교의 한국화를 몸소 실천한 고승,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 법왕님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한 전기 『세계일화 世界一花』 (저자 담화 이존영)가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며 다시 세상에 나온다. 1992년 4월 26일, 세계 15억 불자들의 구심체로 탄생한 세계불교법왕청은 불교의 세계화를 향한 상징적 이정표였다. 이는 단순한 종교기관의 설립을 넘어, 바티칸 시티의 교황청처럼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거대한 실천의 장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일붕 법왕님이 계셨다. 제주도 섬마을에서 태어나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진리를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그는, 독학으로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5개 국어를 익히며 세계와의 문을 스스로 열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불법佛法을 전파한 선각자로, 하와이·LA·뉴욕·워싱턴·브라질 등지에서 활발한 포교 활동을 전개했고, 1970~80년대에는 유럽과 아시아, 남미를 넘나들며 불교를 통한 민간외교의 교두보 역할을 해냈다. 일붕은 또 유엔과 바티칸, 달라이 라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전국 곳곳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그 숫자만 해도 무려 788기. 이 뜻깊은 평화의 유산은 세계불교 초대법왕이자 한국 불교계의 큰 어른이신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되었다. “남북이 하나 되어,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길목마다 평화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깊은 신념 아래, 큰스님은 수십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 세계평화·남북통일기원시비를 세우는 대원력의 회향을 실천해오셨다. 특히 787번째 시비는 큰스님께서 열반하신 1996년 6월 25일,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 통일촌 마을에 건립되어 더욱 깊은 의미를 간직한다. 통일을 향한 큰스님의 평생 염원이 깃든 그 자리에서, 시비는 오늘도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에 말을 건넨다. “통일이여, 오라. 평화여, 피어나라.” 이 시비에는 단순한 시구만이 새겨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거룩한 정신의 표상이다. 총 788기에 이르는 시비는 그 자체로 평화의 등불이며, 시심(詩心)으로 새겨진 민족의 기도문이다. 통일을 바라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염원을 담아낸 상징이자, 한국 불교가 세계를 향해 펼친 자비와 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지난 주말, 한 사찰에서 열린 특별 법문 시간에 가족 단위의 신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불교의 핵심 가르침 ‘연기緣起’에 대해 함께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됐다. 이번 법문은 “모든 것은 서로 덕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으며, 어린아이부터 조부모 세대까지 전 세대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연기’의 뜻과 가치를 풀어낸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법문에서는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그릇에도 햇빛, 바람, 농부의 손길, 조상의 보호가 깃들어 있다”며,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원인이고 조건이며 결과로 이어지는 깊은 인연의 사슬 안에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내가 나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로 인해 내가 있고, 그 너도 또 누군가로 인해 존재한다.” 이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는 참석한 가족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가족도 연기의 살아있는 증거로서 법문은 특히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를 ‘연기의 가장 가까운 실현’*로 해석해 주목을 받았다. 부모 없이 자식이 없고, 자식이 없으면 부모도 부모가 아니며, 조부모의 사랑이 손주의 웃음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은 현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작은 자비가 고통을 녹이고, 모든 중생을 어루만집니다. 한 줄기 바람이 메마른 들판을 적시듯, 한 방울 이슬이 타는 마음을 식히듯, 작은 자비 하나가 깊은 고통을 녹입니다. 우리는 때로 크고 위대한 것을 꿈꾸지만, 진정한 구제는 작고 부드러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자리를 내어주는 작은 몸짓, 그 미세한 자비가 얼어붙은 인생을 풀어주고, 그 작은 연민이 온 세상의 상처를 어루만집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큰 공덕은 작은 선행에서 싹튼다"고. 미세한 자비는 파도처럼 퍼져, 이 세상의 온갖 고통과 아픔을 녹이는 힘이 됩니다. 愍念群生민념군생 모든 중생을 어루만지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 이 마음을 일으킬 때, 우리는 부처님과 하나가 됩니다. 오늘, 이 작은 자비를 내 마음에 심어 봅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하고, 한 생명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가장 위대한 수행이 됩니다. 작은 자비로 고통을 녹이고, 깊은 연민으로 중생을 품는 삶. 이 길 위에 우리 함께 서기를 발원합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주의 진리는 큰 북과도 같습니다. 크게 치면 큰 소리가 나고, 작게 치면 작은 소리가 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이 북을 두드리는 손길이 됩니다. 정성스럽고 간절히 치면 그 울림은 멀리멀리 퍼져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법음이 됩니다. 그러나 산만하고 무심히 치면 그 소리는 작고 흐릿하여, 자신조차도 듣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고 맙니다. 우리 가족이 오늘 나눈 말들은 어떤 소리로 남았는지요? 격려와 감사의 소리였는지, 아니면 불평과 원망의 소리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가족은 작은 우주입니다. 이 우주 안에서 울리는 소리는 가장 진하고 깊은 진실이 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가장 조심하고 또 가장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때로는 큰 북소리처럼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해야 하고, 때로는 작은 북소리처럼 다정하고 조용한 말로 서로를 감싸야 합니다. 우주의 북은 거짓을 울리지 않습니다. 진심만이 울림을 남깁니다. 우리 가족의 마음이 진심으로 북을 울릴 수 있도록,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마음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향해 걷는 길 위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북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5월 5일 오전 10시,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주요 사찰에서 봉축법요식이 일제히 봉행됐다. 조계사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지도자와 정·관계 인사, 불자 등 1만여 명이 모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고 자비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조계사에서는 도량결계, 육법공양, 관불의식, 마정수기 등 전통의식과 함께,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평화와 자비 실천을 다짐하는 발원문이 낭독되었다. 법요식은 명고·명종, 반야심경 봉독, 봉축사, 헌등·헌화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봉축사를 통해 “부처님의 탄생은 단지 한 생명의 출현이 아닌, 모든 존재가 지닌 존엄성과 자각의 가능성을 선언한 사건”이라며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곧 세상을 밝히는 첫걸음”임을 강조했다. 이어 “삼독심(탐·진·치)을 비우고 자비와 복덕의 보살심으로 맑은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설파했다. 진우스님은 어린이날을 맞아 “오늘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분열과 불안이 아닌 자비와 평화로 가득하길 기도한다”며 정치권에도 “맑은 정치, 따뜻한 행정”을 당부했다. 성파 종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인 ‘연등회’가 지난 26일 서울 전역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Peaceful World, Compassionate Mind)”이라는 2025년 봉축 표어 아래 열린 이번 연등회는 치유와 화합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불자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 10만여 명이 함께하며 서울의 밤을 환희의 빛으로 수놓았다. 이날 오후 4시 30분,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어울림마당을 시작으로 연등회의 서막이 올랐다.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 율동단을 포함한 1,000여 명이 펼친 다채로운 율동과 공연은 연등회의 흥겨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오후 7시, 연등회의 백미인 연등행렬이 흥인지문을 출발해 종각과 조계사를 잇는 종로 전 구간에서 펼쳐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원로의원 스님, 문화체육관광부 용호성 제1차관 등 주요 인사들과 어린이 대표들이 선두에 나서 치유와 희망,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10만 개의 형형색색 연등과 150여 기의 대형 장엄등이 서울 도심을 수놓았으며, 연등회 프렌즈의 플래시몹 등 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