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세계를 향해 열린 불심佛心, 그 중심에는 한 스님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평화의 길이 있었다. 한국 불교의 세계화와 세계불교의 한국화를 몸소 실천한 고승,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 법왕님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한 전기 『세계일화 世界一花』 (저자 담화 이존영)가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며 다시 세상에 나온다. 1992년 4월 26일, 세계 15억 불자들의 구심체로 탄생한 세계불교법왕청은 불교의 세계화를 향한 상징적 이정표였다. 이는 단순한 종교기관의 설립을 넘어, 바티칸 시티의 교황청처럼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거대한 실천의 장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일붕 법왕님이 계셨다. 제주도 섬마을에서 태어나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진리를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그는, 독학으로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5개 국어를 익히며 세계와의 문을 스스로 열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불법佛法을 전파한 선각자로, 하와이·LA·뉴욕·워싱턴·브라질 등지에서 활발한 포교 활동을 전개했고, 1970~80년대에는 유럽과 아시아, 남미를 넘나들며 불교를 통한 민간외교의 교두보 역할을 해냈다. 일붕은 또 유엔과 바티칸, 달라이 라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전국 곳곳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그 숫자만 해도 무려 788기. 이 뜻깊은 평화의 유산은 세계불교 초대법왕이자 한국 불교계의 큰 어른이신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되었다. “남북이 하나 되어,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길목마다 평화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깊은 신념 아래, 큰스님은 수십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 세계평화·남북통일기원시비를 세우는 대원력의 회향을 실천해오셨다. 특히 787번째 시비는 큰스님께서 열반하신 1996년 6월 25일,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 통일촌 마을에 건립되어 더욱 깊은 의미를 간직한다. 통일을 향한 큰스님의 평생 염원이 깃든 그 자리에서, 시비는 오늘도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에 말을 건넨다. “통일이여, 오라. 평화여, 피어나라.” 이 시비에는 단순한 시구만이 새겨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거룩한 정신의 표상이다. 총 788기에 이르는 시비는 그 자체로 평화의 등불이며, 시심(詩心)으로 새겨진 민족의 기도문이다. 통일을 바라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염원을 담아낸 상징이자, 한국 불교가 세계를 향해 펼친 자비와 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지난 주말, 한 사찰에서 열린 특별 법문 시간에 가족 단위의 신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불교의 핵심 가르침 ‘연기緣起’에 대해 함께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됐다. 이번 법문은 “모든 것은 서로 덕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으며, 어린아이부터 조부모 세대까지 전 세대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연기’의 뜻과 가치를 풀어낸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법문에서는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그릇에도 햇빛, 바람, 농부의 손길, 조상의 보호가 깃들어 있다”며,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원인이고 조건이며 결과로 이어지는 깊은 인연의 사슬 안에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내가 나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로 인해 내가 있고, 그 너도 또 누군가로 인해 존재한다.” 이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는 참석한 가족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가족도 연기의 살아있는 증거로서 법문은 특히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를 ‘연기의 가장 가까운 실현’*로 해석해 주목을 받았다. 부모 없이 자식이 없고, 자식이 없으면 부모도 부모가 아니며, 조부모의 사랑이 손주의 웃음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은 현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작은 자비가 고통을 녹이고, 모든 중생을 어루만집니다. 한 줄기 바람이 메마른 들판을 적시듯, 한 방울 이슬이 타는 마음을 식히듯, 작은 자비 하나가 깊은 고통을 녹입니다. 우리는 때로 크고 위대한 것을 꿈꾸지만, 진정한 구제는 작고 부드러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자리를 내어주는 작은 몸짓, 그 미세한 자비가 얼어붙은 인생을 풀어주고, 그 작은 연민이 온 세상의 상처를 어루만집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큰 공덕은 작은 선행에서 싹튼다"고. 미세한 자비는 파도처럼 퍼져, 이 세상의 온갖 고통과 아픔을 녹이는 힘이 됩니다. 愍念群生민념군생 모든 중생을 어루만지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 이 마음을 일으킬 때, 우리는 부처님과 하나가 됩니다. 오늘, 이 작은 자비를 내 마음에 심어 봅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하고, 한 생명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가장 위대한 수행이 됩니다. 작은 자비로 고통을 녹이고, 깊은 연민으로 중생을 품는 삶. 이 길 위에 우리 함께 서기를 발원합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주의 진리는 큰 북과도 같습니다. 크게 치면 큰 소리가 나고, 작게 치면 작은 소리가 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이 북을 두드리는 손길이 됩니다. 정성스럽고 간절히 치면 그 울림은 멀리멀리 퍼져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법음이 됩니다. 그러나 산만하고 무심히 치면 그 소리는 작고 흐릿하여, 자신조차도 듣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고 맙니다. 우리 가족이 오늘 나눈 말들은 어떤 소리로 남았는지요? 격려와 감사의 소리였는지, 아니면 불평과 원망의 소리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가족은 작은 우주입니다. 이 우주 안에서 울리는 소리는 가장 진하고 깊은 진실이 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가장 조심하고 또 가장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때로는 큰 북소리처럼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해야 하고, 때로는 작은 북소리처럼 다정하고 조용한 말로 서로를 감싸야 합니다. 우주의 북은 거짓을 울리지 않습니다. 진심만이 울림을 남깁니다. 우리 가족의 마음이 진심으로 북을 울릴 수 있도록,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마음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향해 걷는 길 위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북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5월 5일 오전 10시,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주요 사찰에서 봉축법요식이 일제히 봉행됐다. 조계사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지도자와 정·관계 인사, 불자 등 1만여 명이 모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고 자비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조계사에서는 도량결계, 육법공양, 관불의식, 마정수기 등 전통의식과 함께,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평화와 자비 실천을 다짐하는 발원문이 낭독되었다. 법요식은 명고·명종, 반야심경 봉독, 봉축사, 헌등·헌화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봉축사를 통해 “부처님의 탄생은 단지 한 생명의 출현이 아닌, 모든 존재가 지닌 존엄성과 자각의 가능성을 선언한 사건”이라며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곧 세상을 밝히는 첫걸음”임을 강조했다. 이어 “삼독심(탐·진·치)을 비우고 자비와 복덕의 보살심으로 맑은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설파했다. 진우스님은 어린이날을 맞아 “오늘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분열과 불안이 아닌 자비와 평화로 가득하길 기도한다”며 정치권에도 “맑은 정치, 따뜻한 행정”을 당부했다. 성파 종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인 ‘연등회’가 지난 26일 서울 전역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Peaceful World, Compassionate Mind)”이라는 2025년 봉축 표어 아래 열린 이번 연등회는 치유와 화합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불자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 10만여 명이 함께하며 서울의 밤을 환희의 빛으로 수놓았다. 이날 오후 4시 30분,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어울림마당을 시작으로 연등회의 서막이 올랐다.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 율동단을 포함한 1,000여 명이 펼친 다채로운 율동과 공연은 연등회의 흥겨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오후 7시, 연등회의 백미인 연등행렬이 흥인지문을 출발해 종각과 조계사를 잇는 종로 전 구간에서 펼쳐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원로의원 스님, 문화체육관광부 용호성 제1차관 등 주요 인사들과 어린이 대표들이 선두에 나서 치유와 희망,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10만 개의 형형색색 연등과 150여 기의 대형 장엄등이 서울 도심을 수놓았으며, 연등회 프렌즈의 플래시몹 등 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어떤 이는 우리의 벗이 되어 따스한 손을 잡아주고, 어떤 이는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怨親平等 同體大悲" 원수와 벗을 가르지 말고, 모두를 평등히 여기며, 한 몸처럼 품는 자비를 지녀야 한다고. 원망하는 이도, 사랑하는 이도, 모두 한 세상의 중생이요, 모두가 고통과 기쁨을 함께 겪는 인연입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그 사람 또한 자신의 무명을 이기지 못해 아픔을 드러낸 것일 뿐, 본성은 모두 부처님과 같은 청정한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움에 끌리지 않고, 친애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인연을 평등하게 대하고, 한없는 자비로 서로를 어루만져야 합니다. 서로 다투는 마음을 거두고, 서로 상처내는 말을 삼가며, 적대와 집착을 초월하여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 그리할 때, 우리 마음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이 세상은 고통이 사라진 정토淨土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怨親平等원친평등'의 마음을 지니고, '同體大悲동체대비'의 가슴으로 세상을 품읍시다. 그것이 곧, 자신을 구하는 길이요, 모든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부처님오신날의 거룩한 뜻을 기리며, 세계불교 초대법왕이신 일붕 서경보 존자 예하의 위대한 가르침과 숭고한 뜻을 영원히 계승하고자 "일붕기념관 헌정문"을 삼가 바칩니다. 담화총사는 일붕 존자 예하를 8년 6개월 동안 가까이 모시며, 수행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의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이 인연을 바탕으로, 존자 예하의 성스러운 자취를 길이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하여, 벽사초불정사 3만 5천여 평의 부지 위에 약 200평 규모의 '일붕 존자 기념관' 건립을 발원하고, 이에 설계 작업에 착수하였음을 삼가 아룁니다. 이 기념관이 불법佛法의 등불이 되어 후세에 길이 빛나기를 발원합니다. 푸른 바람 속에서 태어나, 세상의 모든 고통을 품고자 하셨던 이여. 1914년 제주 서귀포 땅에 빛으로 내려오신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 예하, 그 발자취는 곧 불법(佛法)의 길이었고, 그 숨결은 세계 평화와 인류 공존의 노래였나이다. 불국사의 종소리로 진리의 씨앗을 심으셨고, 미국과 세계 오십 개국을 순회하며 불법의 등불을 밝히셨으며, 153개국 5,300여 불교단체의 추대로 세계불교법왕청을 창설하고, 첫 번째 세계불교 법왕初代法王의 위대한 위상을 세
법왕청신문 이준석 기자 | 담화총사가 “벽사초불정사에 세계불교 초대법왕이신 일붕 서경보 존자 예하의 뜻을 받들어 불사에 부치는 노래”를 헌정 하였다. 다음은 담화총사의 “벽사초불정사에 부치는 노래” 전문이다. 십만 불빛이 모여 어둠을 깨뜨린다, 벽사초불정사여, 고요 속에 피어나는 별빛이어라. 푸른 바람을 가르고 큰 새 一鵬은 날아올랐다. 세상의 끝, 하늘의 끝, 법法의 빛을 싣고 세계를 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불법의 씨앗을 뿌리며 평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그 발길은 멈추지 않고 청주의 별 아래, 벽사초불정사에 내려앉아 우주의 달빛과 숨을 나눈다.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의 노래를 부르며, 진리의 등불로 다시금 어둠을 밝히리라. 고요 속에 빛나라, 벽사초불정사여. 영원 속에 피어나라, 一鵬의 뜻이여. 담화총사曇華總師 두손모음...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는 5월5일(음력 4.8) 불기2569(202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4월23일 봉축법어를 내렸다. 중봉 성파대종사는 “부처님께서 룸비니에 탄생하실 때 두루 일곱 걸음을 걸으시니 걸음마다 연꽃이 솟아올랐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며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라 하셨도다”며 “우리 모두 이러한 존엄성을 인정하고 잘 활용하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이 땅을 극락처럼 만들 수 있으니 각자에게 본래 구족한 불성(佛性)을 인정하는 삶을 살고, 법장 비구가 극락세계를 만들었듯이 각자의 불국토를 만들어 내는 원력을 세우고, 각자가 이를 성취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내렸다. 이어 “각자의 안목과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부처님의 안목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부처님이 권한 행(行)을 하지 않았으며 ‘나’라는 한계와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일어나는 일이니 이러한 조건에서 벗어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도다”라며 “부처님 안목으로 세상을 살면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행하는 일마다 무진법문이 되도다”라고 설했다. 다음은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 봉축법어 전문. [20
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1994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제2회 세계불교법왕청 총회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세계불교평화의 날’로 제정한 사건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선, 불교가 세계 평화의 중심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알린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당시 한국의 일붕 서경보 스님과 스리랑카의 찬다난다 스님이 공동 법왕으로서 함께 선포한 이 결정은, 불교권 국가 간 연대의 첫 결실이자 동서 불교의 조화로운 통합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주는 하나, 세계는 한 가족’이라는 법어 속에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모든 생명의 공존과 평화를 향한 불교의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그 선언은 일회성 행사로 끝났는가? 아니다. 그날의 외침은 오늘도 되살아나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분열,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핵무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고, 종교 간 충돌과 환경 파괴는 새로운 위기로 다가온다. 이럴 때일수록, 30여 년 전 선포된 ‘세계불교평화의 날’의 가치는 더욱 절실하다. 평화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계속 이어져야 한다. 실천과 전승으로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불교는 침묵 속의 외침이다. 수행은 조용하지만 그 목적은 크다. 세상에 평화를, 마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작은 복덕이라도, 그 안에 깃든 마음이 크면 하늘도 감동합니다." 우리는 종종 큰 공덕, 큰 복을 바라고 수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一切福德 從微善起일체복덕 종미선기」 모든 복덕은 아주 작은 선행에서 비롯된다고. “소분복덕少分福德”이란 말은 겉으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 안에는 수행자의 진심, 자비의 씨앗, 깨달음의 발심이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길을 걷다 쓰러진 나뭇가지를 치워주는 손길, 배고픈 이에게 내미는 따뜻한 한 그릇,이른 새벽 법당에 홀로 등을 밝히는 그 마음이 모두가 소분복덕입니다. 세속은 성과를 크기로 판단하지만, 불가는 그 마음의 깊이와 청정함을 먼저 봅니다. 복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기 위해 짓는 것입니다. 소분복덕을 쌓는 이의 길은 비록 느릴지언정 결코 퇴보하지 않습니다. 큰 물줄기도 작은 이랑에서 흘러나오듯, 부처의 길도 작은 복덕의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도 오늘, 작은 복 하나라도 실천해봅시다. “작은 복덕이 쌓여 큰 깨달음의 길이 됩니다.” “소분의 공양도 진심이면 부처님께 이릅니다.”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기2569(2025)년 부처님오신날 법왕청 이사장 봉축 법어입니다. 一切衆生 悉有佛性 일체중생 실유불성 모든 중생은 부처님의 성품을 지녔습니다. 應當自覺 勿尋外境 응당자각 물심외경 진리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며, 밖에서 찾지 마십시오. 一燈能破 千年之暗 일등능파 천년지암 등불 하나가 천 년의 어둠을 밝힙니다. 微慈化苦 愍念群生 미자화고 민념군생 작은 자비가 고통을 녹이고, 모든 중생을 어루만집니다. 怨親平等 同體大悲 원친평등 동체대비 원수와 벗을 평등히 여기며, 하나 된 자비로 품어야 합니다. 今此佳辰 如來降誕 금차가신 여래강탄 오늘은 여래께서 이 땅에 오신 거룩한 날입니다. 發心照世 慈光普照 발심조세 자광보조 우리의 발심이 세상을 비추고, 자비의 광명이 두루 퍼지기를. 願以此燈 功德無量 원이차등 공덕무량 이 등불의 공덕이 무량하게 펼쳐지기를 발원합니다. 願世和平 汝心慈悲 원세화평 여심자비 세상에는 평화가, 그대 마음에는 자비가 머물기를... 불기 2569년 사월초파일 (財)法王廳 平和財團 (재)법왕청 평화재단 理事長 曇華總師 合掌 이사장 담화총사 합장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우리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마음의 길을 함께 걸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깊은 물음입니다. 살을 가진 육신인가, 감정을 느끼는 마음인가, 아니면 생각하는 지성인가?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 즉, 인간의 본질은 결코 외모나 재물, 지식에 있지 않고, 바로 그 안에 숨겨진 ‘깨달음의 씨앗’, ‘자비와 지혜의 빛’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 화를 내고, 질투하고, 욕망에 이끌려 방황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은 아닙니다. 그 모든 험한 파도를 지나 고요한 마음의 바다 아래에는 언제나 맑고 밝은 불성이 숨 쉬고 있습니다. 본질은 감추어져 있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릴 수는 있어도, 태양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본래의 나를 기억하는 것. 진실한 나, 자비로운 나, 지혜로운 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수행을 합니다. 매일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바라보며, 거짓된 나를 내려놓고, 참된 나와 다시 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