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남의 죄는 내가 대신 씻을 수 없습니다.” 이 간단하고도 명징한 말이 불교에서는 ‘타죄불속他罪不贖’이라는 네 글자로 응축된다. 이는 부처님의 인과법칙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자, 우리가 살아가며 종종 착각하거나 넘나드는 경계에 대한 분명한 일침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하고, 대신 짊어져 주고 싶어 한다. 가족의 실수, 친구의 잘못, 제자의 허물조차 내가 대신 책임지려는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의 진리는 단호하다. 모든 존재는 자신이 지은 인연의 과보를 스스로 겪어야 하며, 아무도 타인의 업을 대속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비는 무엇인가? 진정한 자비는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업을 직면하고 정화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다. 지혜로운 스승은 제자의 죄를 대신 지지 않는다. 다만 그가 그것을 깨달아 뉘우치고 새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이는 오늘날의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부모가 자식의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순간, 아이는 책임감 대신 의존을 배운다. 지도자가 공동체의 잘못을 대리 사죄하는 데에 그친다면, 구성원은 각자의 반성과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된다.
타인의 죄를 책임지는 척하며 내 마음을 망치지 말라, 남의 잘못에 분노하고 억울함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분노를 키워 스스로의 마음을 더럽히는 순간, 그 죄는 더 이상 남의 죄가 아니라 내 업이 된다.
‘타죄불속’이라는 말은 단지 남의 죄를 갚을 수 없다는 의미를 넘어, 남의 죄에 내가 휘둘리지 말고, 내 마음의 청정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삶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타인의 잘못은 그 사람의 업과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비난보다 이해가 먼저여야 한다. 대신 해결해주려 하지 말고, 진정한 자비는 도움을 주는 척하며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분노, 억울함, 안타까움이 일어날 때마다 내 마음의 흐림을 먼저 들여다보라. ‘그 죄는 그 사람의 몫이고, 내 평정은 나의 몫’임을 잊지 말자. 불교에서는 “업은 나의 그림자와 같아서 따라오지 않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림자를 남에게 맡길 수 없듯, 삶의 결과 또한 타인에게 전가할 수 없다. 타죄불속他罪不贖, 이 짧은 법문은 우리에게 말한다.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며, 남의 삶은 다만 존중하고 도울 뿐이라는 것을. 진정한 자비는 개입이 아니라 비움 속의 동행이며, 진정한 지혜는 내 삶을 바로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