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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붕새가 날은 까닭은"

부처가 되는 길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이 책은 세계불교 초대 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전기 집이며, 구술자 일붕 서경보, 필수(筆受)자 이존영으로 역은 책이다.

 

 

이 책의 1편 오 한국의 달마여, 450여 페이지가 법왕청신문에 연재가 끝남으로서 이어서 붕새가 날은 까닭은 450여 페이지를 순차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자 법왕청신문을 통하여 연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붕 徐京保(Kyung Bo Seo)세계불교법왕청 초대법왕 법호 : 일붕 서경보박사 83개 취득, 9백여 권 저술.• 기네스북 최다기록보유. ‘95 노벨평화상 후보

 

 

1. 

부처가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부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처를 내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부처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기도, 염불, 주문 등이 있습니다.

 

이는 이미 깨우친 각자覺者 즉, 부처의 힘을 빌려 부처가 되겠다는 타력신앙他力信仰입니다.

 

이 타력신앙은 샤머니즘 적인 토속신앙과 뒤섞여 우리 민족의 가장 일반적인 신앙으로 굳어져 오랜 세월 동안 지속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라 시대의 원효대사가 귀족불교를 대중 불교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토종이 이에 해당합니다.

 

지금도 깊은 산사를 찾아가면 부처의 힘을 빌려 부처가 되고자 하는 소박한 불자들이 남긴 흔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소위 기복신앙으로 불리는 행위들이 그것입니다.

 

반면 부처를 내 속으로 끌어들이는 길에는 고행과 참선이 있습니다.

 

이는 스스로 깨우쳐 부처가 되겠다는 자력신앙(自力信仰)입니다. 비교적 교리가 잘 정비되고 수행의 방법이 정밀화된 교종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자력 신앙을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속에 원래부터 있는 불성(佛性)을 제힘과 노력으로 찾아 갈고 닦아 깨우침을 얻는’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길이 부처가 되는 바른길일까요? 이 물음은 어리석은 물음입니다. 마치 인생을 놓고 굵고 짧게 사는 것이 옳으냐,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더 현명하고 사려 깊은 지혜가 있다면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독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시대적인 여건, 답하는 이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 주변 환경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진리는 하나이나 진리에 이르는 길은 수없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부처와 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 있는 진여(眞如)를 깨달으면 부처가 나요. 내가 부처입니다. 그러나 이 쉬운 도리를 깨닫지 못하면 나와 부처가 별개가 됩니다.

 

그러므로 깨치면 주체와 환경이 혼연일체가 되지만 깨치지 못하면 나 자신도 내가 아닙니다. 깨친 사람은 시간마다 환희가 있고 장소마다 행복이 있습니다. 극락이 따로 없게 됩니다. 하지만 깨치지 못한 사람은 나날이 번민이요, 모든 것이 지옥입니다. 때문에 깨침을 가로막는 마음의 걸림을 없애야 합니다.

 

마음의 걸림이 없으면 불평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태평과 불만도 따지고 보면 오직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음이 편하면 번뇌도 환희가 되고, 마음이 불안하면 극락도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우주의 공간에 비하면 우리 인간의 존재는 태평양에 떨어진 한 톨의 좁쌀보다 작고,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우리 인간의 평생은 하루살이의 삶보다 짧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마음은 비록 보이지도 만질 수도 그 형태도 없지만 광대무변한 우주와 장구한 세월을 다 담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불교는 이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영원한 깨우침을 얻자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위대한 것입니다. 창허 선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생각에 착한 마음을 내면 부처가 마왕의 궁정에 앉은 것이요, 한 생각이라도 악한 생각을 내면 마왕이 부처의 집에 걸터앉은 것이로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지고지순한 선(善)의 화신이 되기도 하고 극악무도한 악(惡)의 화신이 되기도 합니다.

 

각자가 선의 화신이 되느냐, 악의 화신이 되느냐는 오직 스스로가 택할 문제입니다.

 

부처가 되려면 청정한 마음을 갈고 닦아 스스로가 자신의 거울인 마음에 비추어 그 투명성을 확인하는 전제조건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인간은 윤회의 사슬을 끊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서로 화합하여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아니한非一非異 세계로 접어들 것입니다.

 

그 순간 당신은 성불(成佛)의 법열法悅을 느낄것입니다.


 
글 / 초대법왕 일붕 / 필수자 비서실장 담화총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