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인 ‘연등회’가 지난 26일 서울 전역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세상에 평안을, 마음에 자비를(Peaceful World, Compassionate Mind)”이라는 2025년 봉축 표어 아래 열린 이번 연등회는 치유와 화합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불자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 10만여 명이 함께하며 서울의 밤을 환희의 빛으로 수놓았다. 이날 오후 4시 30분,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어울림마당을 시작으로 연등회의 서막이 올랐다.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 율동단을 포함한 1,000여 명이 펼친 다채로운 율동과 공연은 연등회의 흥겨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오후 7시, 연등회의 백미인 연등행렬이 흥인지문을 출발해 종각과 조계사를 잇는 종로 전 구간에서 펼쳐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원로의원 스님, 문화체육관광부 용호성 제1차관 등 주요 인사들과 어린이 대표들이 선두에 나서 치유와 희망,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10만 개의 형형색색 연등과 150여 기의 대형 장엄등이 서울 도심을 수놓았으며, 연등회 프렌즈의 플래시몹 등 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우리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마음의 길을 함께 걸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깊은 물음입니다. 살을 가진 육신인가, 감정을 느끼는 마음인가, 아니면 생각하는 지성인가?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一切衆生 悉有佛性일체중생 실유불성”,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 즉, 인간의 본질은 결코 외모나 재물, 지식에 있지 않고, 바로 그 안에 숨겨진 ‘깨달음의 씨앗’, ‘자비와 지혜의 빛’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 화를 내고, 질투하고, 욕망에 이끌려 방황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은 아닙니다. 그 모든 험한 파도를 지나 고요한 마음의 바다 아래에는 언제나 맑고 밝은 불성이 숨 쉬고 있습니다. 본질은 감추어져 있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릴 수는 있어도, 태양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본래의 나를 기억하는 것. 진실한 나, 자비로운 나, 지혜로운 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수행을 합니다. 매일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바라보며, 거짓된 나를 내려놓고, 참된 나와 다시 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어떤 이는 우리의 벗이 되어 따스한 손을 잡아주고, 어떤 이는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怨親平等 同體大悲" 원수와 벗을 가르지 말고, 모두를 평등히 여기며, 한 몸처럼 품는 자비를 지녀야 한다고. 원망하는 이도, 사랑하는 이도, 모두 한 세상의 중생이요, 모두가 고통과 기쁨을 함께 겪는 인연입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그 사람 또한 자신의 무명을 이기지 못해 아픔을 드러낸 것일 뿐, 본성은 모두 부처님과 같은 청정한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움에 끌리지 않고, 친애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인연을 평등하게 대하고, 한없는 자비로 서로를 어루만져야 합니다. 서로 다투는 마음을 거두고, 서로 상처내는 말을 삼가며, 적대와 집착을 초월하여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 그리할 때, 우리 마음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이 세상은 고통이 사라진 정토淨土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怨親平等원친평등'의 마음을 지니고, '同體大悲동체대비'의 가슴으로 세상을 품읍시다. 그것이 곧, 자신을 구하는 길이요, 모든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부처님오신날의 거룩한 뜻을 기리며, 세계불교 초대법왕이신 일붕 서경보 존자 예하의 위대한 가르침과 숭고한 뜻을 영원히 계승하고자 "일붕기념관 헌정문"을 삼가 바칩니다. 담화총사는 일붕 존자 예하를 8년 6개월 동안 가까이 모시며, 수행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의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이 인연을 바탕으로, 존자 예하의 성스러운 자취를 길이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하여, 벽사초불정사 3만 5천여 평의 부지 위에 약 200평 규모의 '일붕 존자 기념관' 건립을 발원하고, 이에 설계 작업에 착수하였음을 삼가 아룁니다. 이 기념관이 불법佛法의 등불이 되어 후세에 길이 빛나기를 발원합니다. 푸른 바람 속에서 태어나, 세상의 모든 고통을 품고자 하셨던 이여. 1914년 제주 서귀포 땅에 빛으로 내려오신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 예하, 그 발자취는 곧 불법(佛法)의 길이었고, 그 숨결은 세계 평화와 인류 공존의 노래였나이다. 불국사의 종소리로 진리의 씨앗을 심으셨고, 미국과 세계 오십 개국을 순회하며 불법의 등불을 밝히셨으며, 153개국 5,300여 불교단체의 추대로 세계불교법왕청을 창설하고, 첫 번째 세계불교 법왕初代法王의 위대한 위상을 세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작은 자비가 고통을 녹이고, 모든 중생을 어루만집니다. 한 줄기 바람이 메마른 들판을 적시듯, 한 방울 이슬이 타는 마음을 식히듯, 작은 자비 하나가 깊은 고통을 녹입니다. 우리는 때로 크고 위대한 것을 꿈꾸지만, 진정한 구제는 작고 부드러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자리를 내어주는 작은 몸짓, 그 미세한 자비가 얼어붙은 인생을 풀어주고, 그 작은 연민이 온 세상의 상처를 어루만집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큰 공덕은 작은 선행에서 싹튼다"고. 미세한 자비는 파도처럼 퍼져, 이 세상의 온갖 고통과 아픔을 녹이는 힘이 됩니다. 愍念群生, 민념군생 모든 중생을 어루만지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 이 마음을 일으킬 때, 우리는 부처님과 하나가 됩니다. 오늘, 이 작은 자비를 내 마음에 심어 봅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하고, 한 생명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가장 위대한 수행이 됩니다. 작은 자비로 고통을 녹이고, 깊은 연민으로 중생을 품는 삶. 이 길 위에 우리 함께 서기를 발원합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달 때, 축원문을 낭독해야 하는 이유 1. 연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원誓願'을 담은 행위입니다. 연등燃燈을 다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찬탄하고, 나 또한 그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라는 서원의 표시입니다. 따라서 그냥 등을 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마음에 어떤 서원을 세우는지 분명히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서원을 언어로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축원문 낭독입니다. 2. 연등은 '내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의식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이날 우리는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뜻, 즉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새깁니다. 연등은 내 마음속 어둠(탐진치 貪瞋癡)을 밝히고, 자비와 지혜의 빛을 세우겠다는 자기 다짐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등을 달 때 그냥 달면 '행위'에 그치지만, 축원문을 낭독하면 '의미'와 '발심發心'이 함께 합니다. (외형을 넘어서 내면을 세우는 수행이 됩니다.) 3.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供養'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연등도 공양입니다. 공양은 몸과 말과 뜻(身口意)으로 드려야 참된 공양이 됩니다. 몸으로는 연등을 달고, 말로는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등불 하나가 천 년의 어둠을 밝힙니다. 거대한 세상 속, 우리는 때로 깊고 긴 어둠을 마주합니다. 삶의 고단함, 인간 관계의 상처, 미래에 대한 불안, 그 모든 것들이 우리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끔은 아무리 걸어도 길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一燈能破 千年之暗" 작은 등불 하나가 천 년을 이어온 어둠을 단숨에 걷어낸다고. 등불은 크거나 화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맑은 마음, 진실한 자비, 따뜻한 손길 하나면 충분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자녀들의 순수한 웃음이, 형제자매 간의 작은 배려가 그 자체로 등불이 되어 가정이라는 작은 세계를 환히 밝힙니다. 한 가족이 마음을 모으면, 한 사람의 작은 선행이 이어지면, 그 빛은 가정을 넘어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끝내 이 세상의 어둠마저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짐해야 합니다. 내 안에 등불을 지피고, 내 가족의 등불을 함께 모아, 더 밝은 하루,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겠노라고. 등불은 바람에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진심 때문입니다. 사랑과 믿음, 이해와 용서로 이어진 가족의 인연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외교저널 영문판 4월호 JPG전체보기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정근송 자식을 위한 염불수행]관세음보살정근觀世音菩薩精勤 영인스님 독송, 본 방송 (불교연합방송)은 법왕청신문에서 제작한 영상입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명상]108배 참회문 차례대로 108배 따라하기 순서대로 따라해 보세요 소원을 이루는 지름길, 본 방송 (불교연합방송)은 법왕청신문에서 제작한 영상입니다. ,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경모음] 자식을 위한 기도 우리말 천수경, 우리말 천지팔양신주경 영인스님 불교연합방송, 본 방송 (불교연합방송)은 법왕청신문에서 제작한 영상입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경모음]우리말 반야심경 영인스님 매일매일 기도하시면 소원은 이루어집니다. 담화총사, 본 방송 (불교연합방송)은 법왕청신문에서 제작한 영상입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은 ‘다름’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장애인과의 소통에서는 우리가 먼저 가진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장애인을 마주할 때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바라는 것이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단지 동등하게 존중받는 일상적 태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인을 일반인과 동일하게 대하며 자연스럽고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입니다. 장애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정신적 장애는 흔히 유전적인 요인으로만 이해되곤 하지만, 사실은 성장 환경과 사회적 요소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곧 교육과 대화, 그리고 환경적 지원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국가 역시 장애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책임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국민에게 교육과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단지 복지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권리에 대한 헌신입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인공 의족으로 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산 용수 달마사의 해운 김대현 스님이 세계불교 초대 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 예하의 수제자로서 수행과 예술을 겸비한 달마도 화풍의 대가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명인연합회로부터 달마도 부문 대한민국 명인으로 선정됐다. 해운 스님은 30년 이상 달마도에 매진하며, 전통 불화의 엄정한 정신성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독창적인 달마 화풍을 구축해왔다. 그의 그림 속 달마대사는 단지 한 인물의 초상이 아니라, 수행자 자신의 마음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가 그리는 달마는 때로는 무표정한 듯 고요하나, 그 속엔 날카로운 통찰과 자비심이 스며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꿰뚫는 강렬한 눈빛, 거침없는 먹의 흐름, 침묵을 닮은 여백은 마치 화선지 위의 참선과도 같다. 스님의 작품을 마주한 이들은 종종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마주하는 느낌”이라 말한다. 또한 해운 스님의 달마도는 “행운을 부르는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집안에 달마도를 걸면 기운이 맑아지고, 복이 들며, 나쁜 기운이 물러간다는 입소문에 따라 전국 각지의 신도들과 예술 애호가들이 그의 그림을 찾고 있다. 대한민국 명인연합회는 이번 선정 배경에 대해 “해운 스님은 단순히 전통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작은 복덕이라도, 그 안에 깃든 마음이 크면 하늘도 감동합니다." 우리는 종종 큰 공덕, 큰 복을 바라고 수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一切福德 從微善起일체복덕 종미선기」 모든 복덕은 아주 작은 선행에서 비롯된다고. “소분복덕少分福德”이란 말은 겉으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 안에는 수행자의 진심, 자비의 씨앗, 깨달음의 발심이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길을 걷다 쓰러진 나뭇가지를 치워주는 손길, 배고픈 이에게 내미는 따뜻한 한 그릇,이른 새벽 법당에 홀로 등을 밝히는 그 마음이 모두가 소분복덕입니다. 세속은 성과를 크기로 판단하지만, 불가는 그 마음의 깊이와 청정함을 먼저 봅니다. 복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기 위해 짓는 것입니다. 소분복덕을 쌓는 이의 길은 비록 느릴지언정 결코 퇴보하지 않습니다. 큰 물줄기도 작은 이랑에서 흘러나오듯, 부처의 길도 작은 복덕의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도 오늘, 작은 복 하나라도 실천해봅시다. “작은 복덕이 쌓여 큰 깨달음의 길이 됩니다.” “소분의 공양도 진심이면 부처님께 이릅니다.”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