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노인공경 효사랑 2006년 전국문화예술대축제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태화석가산대선사 초대석 "한국 불교에 바란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 서경보 존자 탄신96주년 및 열반13기 추모대제 만등불사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세계불교고승총연합회 창립총회 남북평화통일기원대법회 2009년 4월 20일 - AW컨벤션센터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세계평화 인류화합 "G20 세계정상회의 개최 성공기원", "국민한마음잇기운동", 결의문 채택, 세계불교평화의 날 선포 기원 대법회, 2010년 10월 10일 - 법왕청 제2청사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 영상 일붕의 발길따라. . . 초대법왕 일붕존자 서경보큰스님 민간외교관, UN전권대사 노벨평화상후보3회추대 126개박사학위, 1996년 6월 25일 원적, 대한민국 승려 최초로 미국방문, 남북평화통일시비778개건립, 세계불교법왕청설립 초대법왕 일붕서경보 존자, 스리랑카 찬다란다스님과 공공법왕, 세계불교 법왕청 초대법왕 비서실장역임, 현)재단법인 법왕청 평와재단, 현)재단법인 일붕문도 중앙회 이사장 (현)2대법왕 공석으로 권한대행 담화총사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설탕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소금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탕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소금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탕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있고. 소금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바닷물에는 하얀 소금이 들어 있듯이 우리 마음의 바다에도 소금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소금으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맛을 내고 사람들의 사랑에 맛을 내고. 사람들의 이름에 맛을 내도록 합니다. 설탕처럼 흐려지는 이웃이 되지말고. 소금같이 분명해지는 이웃이됩시다. 설탕같이 흔한 친구가 되지 말구. 소금같이 소중한 친구가 됩시다. 설탕같이 맛을 잃는 사람이 되지말구. 소금같이 맛을 얻는 사람이 되도록 합니다. 설탕은 없어도 살수 있지만 소금이 없다면 살수 없습니다. -설탕같은 사람ㆍ소금같은 사람- ㅡ승소ㅡ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글로써 천하를 한손에 쥐락펴락, 들었다 놨다 하기를 하루에도 수 차례씩하는 백 낙천이 도림선사를 참방하였다. 도림선사는 여름철이면 나무 위에다 새처럼 둥지를 만들어 놓고는 그곳에서 정진하였다. 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를 鳥巢, 雀巢선사라는 별명을 붙여 불렀다. 백 낙천이 도림선사를 참방하는 날도 선사는 나무 위에서 정진중이었다. 백 낙천은 도림선사한테 대뜸 선사께서는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계십니까, 라고 수작을 부렸다. 스님께서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시주께서는 왜 그 같이 위험한 곳에 계십니까, 백 낙천은 금방 선사의 법문을 알아차리고 禮를 갖추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적한 大意입니까?"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맑히는 것이 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백 거이가 말하였습니다. 三歲兒孩也道得 "세 살짜리 어린 아이라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三歲孩兒雖道得 八十老翁行不得 "세살짜리 어린애도 알아서 말할 수는 있어도 팔십된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 위는 도림선사와 백 낙천과의 주고 받은 法談이다 여기에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불경모음] 나무아미타불 정근 10독 독경 영인스님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불경모음] 북두주정근 자손에는 만가지 덕과, 장애와 재앙을 막아주고, 업장을 소멸한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5. 세계적인 불교 올림픽 1990년 10월. 한국의 불교계는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에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후 가장 큰 축제를 맞이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바르고 곧게 살겠다고 다짐한 전 세계의 불교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손에 손을 맞잡고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큰 잔치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세계불교도 제17차 서울대회가 열린 것이다. 공식 명칭이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인 이 대회는「불교전파와 세계 불교도들의 친선도모, 세계평화실현 등을 달성하기 위한 불자들의 공동협력」을 목적으로 창설된 불교 최초·최대의 국제기구이다. 이 국제기구는 스리랑카 말라세케라 박사의 평생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 1950년 5월 27개국 129명이 대표들이 콜롬보에 모여 창설대회를 가졌다. 이때 소승·대승·밀교권이 모두 참가하여 종파를 뛰어넘어 범세계적인 조직으로 키울 것을 다짐했다. 한국은 1956년 제4차 네팔대회에 이청담 스님이 비공식적으로 참가했으며, 제8차 태국 방콕대회에서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78년 제12차 대회를 유치했다가 준비가 부족하여 반환한 수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4. 붕새의 세 가지 기적 일붕스님이 한국에서 호국불교 강연을 마무리 짓고 미국에 갔을 때 세 가지의 기적이 일어났다. 첫째는 사형선고를 받은 급성 종양이 없어진 일이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학장을 하고 있다 미국에 세운 절을 관리하고 포교를 전담할 신정덕 스님과 한국을 떠나기 직전 택시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가슴 밑에 단단한 혹이 생겼는데 고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아 보아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신도들이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 수술을 해달라고 했더니 의사들이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습니다. 괜히 두 번 죽지 말고 차라리 죽을 때까지 먹고 싶은 것이나 먹고 하고 싶은 것이나 다 하십시오."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일붕스님은 참선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한편 '문수동자는 어디를 가서 이렇게 위급할 때 돌아보지도 않은가' 하고 기도했다. 곧 빨간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났다. "스님 초조하셨지요? 제가 언제든지 뒤를 따르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스님은 큰 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제가 돌보아 드릴 것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3. 호국불교 사상을 1969년 미국에서 돌아온 일붕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학장과 교수로 있으면서 국내의 강연에도 수없이 참가했다. “한국불교를 서양인에게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만, 세계적인 대석학인 일붕스님의 말씀을 국내신자들이 들을 기회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이런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붕스님은 외국도 중요하지만 국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호국불교 사상을 심어 주기로 결정했다. 호국불교를 말하기 전에 일붕스님은 항상 홍선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그다음에 왜 호국불교가 필요한가를 역설했다. 홍선이란 쉽게 말해 불교의 수련법인 참선공부로 담력을 기르고 정신을 통일하는 것이다. 신라시대에 김유신이 무열왕을 도와서 삼국을 통일시킨 힘이나 신라의 화랑도가 수행과 정진의 원칙으로 삼는 것이 모두 홍선이다. 원광법사가 귀산과 취향이란 화랑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준 오계도 홍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져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단일민족끼리 서로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쪽의 공산집단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2. 세계를 향하여 1964년.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인 불국사 주지 자리를 너무 바빠 더 이상 못하겠다고 사양한 일붕스님은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에 속하던 60년대 초에 대통령이나 외무부 장관보다 더 많은 나라를 돌아 본 일붕스님은 이렇게 생각했다.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 일대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움직이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옮겨간다는 것은 문명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한 국가나 한 개인이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경제발전이 늦은 후진국에서는 국제조류를 재빨리 읽어 거기에 맞도록 대처하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약소민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대국의 속국이 될 것이다. 강대국이 되려면 강대국을 배우고 알아야 된다. 괜한 고집을 부리다가는 망신만 당하고 손해만 보게 된다. 어서 빨리 미국으로 건너가자.” 보통 사람 같았으면 명예가 보장되는 대학 교수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절인 '불국사' 주지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만족했을 것이다. 일붕스님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보다 새롭고, 보다 향상된 길을 찾았다. 길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1. 최초의 삼장법사 학위 1962년 5월9일. 일붕스님은 영국 런던을 떠나 홍콩을 들려 자유중국에 도착했다. 자유중국에서는 9일간을 머무르면서 불교단체가 초청하는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전국을 도는 강연 일정이 끝나자 중국불교 이사장이며 삼장학원 원장인 백성법사가 삼장법사라는 불교 최고의 학위를 주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태몽을 꾼 지 약 50여 년 만에 삼장법사란 학위를 받은 것이다. 일붕스님은 불교박사라는 최고의 박사학위보다 삼장법사로 인정받게 된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삼장이란 경·율·논의 세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삼장법사란 이 모든 것에 통달한 스님에게 주는 존칭이다. 보통 삼장법사 하면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법사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현장스님 외에도 삼장법사로 불리는 분이 있었다. 삼장에서 뜻하는 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이고, 율은 스님과 신도들이 지켜야할 규율에 대한 가르침이고, 논이란 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보완한 설명인 것이다. 일붕스님이 미얀마, 서독, 스리랑카, 영국, 자유중국의 유명 대학 교수를 마치고 돌아오자 모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