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북관대첩비 민족운동중앙회(구국의 별 정문부) 이존영 이사장은 오는 2024년 1월 25일부터 서울 종로구 삼봉로81 두산위브 1층 로비에서 임진왜란 의병장 구국의 별 정문부 장군 북관대첩비를 전시한다.
이 비석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정문부 장군이 활약했던 북관대첩비가 일제에 약탈당했다가 10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북관대첩비의 420년의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비석이다.
정문부는 북관대첩에서 일본군 약 1만 명을 사살해 육상전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는다. 북한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의 2대 명장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열악한 병장기와 병사들을 이끌고 최정예 왜구를 격멸한 그는 임진왜란 때 백성의 추대로 의병장이 된 유일한 관료이다. 그리고 간신의 모함에 역적으로 몰려 고문사 당한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해주정씨 후손인 정용근 전 충북경찰청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구국의 별 정문부 장군과 민족의 혼 북관대첩비의 정신이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해주정씨 후손인 정용근 전 충북경찰청장은 이번 총선에 충주에서 출마하기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국민의 힘 후보로 등록을 마친 상태이다.
정 후보는 지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는 만큼 이번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현 정부에서 할아버지인 구국의 별 정문부 장군과 같이 큰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으로 당선 될 경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지난 전시회에는 세계 3대 투자자로 손꼽히는 짐 로저스도 회장은 전시회에 참석하기 전날 이존영 이사장괌 함께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국민의 힘 당사를 찾아 윤석열 후보를 면담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서 사진전을 둘러본 짐 로저스는 “정문부 장군을 존경한다. 정문부 장군처럼 남북을 하나로 만드는 로저스 장군이 되고 싶다”라며 “이번 사진전이 남북한 관계 복원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북관 대첩비는 지난 2005년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 문화재가 반환되었다. 그 문화재는 바로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보관되어 있던 북관대첩비이다.
이 북관대첩비는 러일 전쟁 중이던 1905년에 일제가 강탈해간 것으로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발발 첫해인 1592년,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鄭文孚가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을 무찌른 일을 기념해 숙종 34년(1707년) 함경도 길주에 건립한 것이다. 북관대첩비란 북관北關에서 이뤄진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일을 기념한 비석이라는 의미로 북관은 함경도를 말한다.
임진왜란 당시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북쪽으로 치고 올라왔으며 함흥까지 도달했다. 당시 조선의 관군은 도망쳤으나 정문부가 의병을 모아 일으켜 이를 격퇴했다.
이후 정문부는 인조반정 직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와병 중이었던 까닭에 왕명을 수행하지 못했는데 이게 빌미가 돼 거듭된 탄핵을 받아 인조 2년(1624) 11월 9일 향년 60세로 옥중에서 장사杖死했다.
그리고 41년 만인 현종 6년(1665), 당시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상소에 힘입어 신원이 회복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숙종 40년(1713)에는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그렇게 세워진 비석의 높이 187cm, 너비 66cm 크기로, 정문부가 주도한 의병들의 활약상을 약 1천500자에 담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1905년 일제는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당시 이 지역에 주둔했던 일본군 제2사단 17여단장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 介) 소장이 북관대첩비를 일본으로 강탈해갔으며 100년 동안이나 머리에 1톤가량의 돌을 얹어놓고 버려둬 왔기에 국민에게 주는 감동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것은 자신들의 치욕적인 패배를 감추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하겠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생으로 가 있던 조소앙이 야스쿠니신사에서 북관대첩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흥학보」에 ‘함경도 임진 의병 대처비’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누가 이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것이며 (북관대첩비를 빼앗긴) 큰 죄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며 호소했다.
하지만 당시는 대한제국의 국권이 점차 일본에 침탈당하던 시기였습니다. 동아일보 1926년 6월 19일 자 기사에는 이생이라고만 알려진 무명의 투고자가 북관대첩비의 소식을 간략하게 전하면서 옆에 ‘대첩이라 하였지마는 그때의 사실과는 전연 다르니 세인은 이 비문을 믿지 말라’고 쓴 나무패가 서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해방과 6.25 전쟁을 겪는 혼란 속에서 북관대첩비는 점점 잊혀가는 듯했다. 그러다 북관대첩비가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지난 1978년의 일이었다.
야스쿠니신사 옆 숲 귀퉁이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비를 도쿄에 사는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최 원장은 고문헌을 조사해가며 북관대첩비가 1905년 러 ㆍ일 전쟁 당시 함경지방에 진출한 일본군 제2 예비사단 여단장 이케다 마시스케 소장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옮겨졌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일을 한국 정부에도 알렸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나서기도 했지만, 일본 측은 원래 북한 땅에 있던 것을 한국에 마음대로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그 후로도 20년 넘게 방치된 북관대첩비는 일본 최대 불교 종파인 천태종 도반이자 일ㆍ한불교복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키누마 센신 스님에 의해 다시 반환이 추진되었으며 가키누마 스님은 97년 6월 고 이구 조선 황세손을 일본에서 만나 야스쿠니 신사 측에 비석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그 일이 무산되자 일ㆍ한불교복지회장 일본 측 가키누마 스님은 99년 한ㆍ일불교복지회장 한국 측 이사장인 초산 엄태종 스님과 동일 법인을 설립해 함께 유엔 등 국제사회에 비석 반환 문제를 호소하기 시작했고 2004년 7월에는 ‘만일 이번에도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더 이상 반환 운동을 펼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이에 한국대사관과 문화재청을 비롯한 많은 민간단체가 비석 반환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키누마 스님과 초산 스님은 야스쿠니 신사의 난부 도시아키 궁사宮司를 직접 만나 북관대첩비 조기반환을 원칙 합의하였으며 이후 양국의 정부가 나서며 반환 협상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006년 3월 1일에 개성에서 인도하기로 하였으며, 3월 23일 북관대첩비가 원래 자리에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제자리를 찾은 북관대첩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보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북관대첩의 주인공 정문부는 본래 문관 출신으로 24세 때에 문과에 차석으로 급제하였고 27세에는 함경북도 병마 평사로 부임했다. 그리고 1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고 그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는 등 떠밀려 의병장이 되었습니다.
싸움에 경험이 없던 그였지만 북으로는 여진女眞•말갈靺鞨을 평정해 국경을 튼튼히 했고, 안으로는 회령會寧•경성鏡城•명천明川 등지에서 일어난 반란叛亂을 진압, 후방을 안정시키는 노력을 했다. 이어 함경도를 점령한 채 약탈을 일삼던 약 2만 명의 왜적들과 4개월여에 걸쳐 혈전을 벌여 왜구를 함경도 땅에서 몰아냈다.
북관대첩비는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문부鄭文符의병장이 왜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숙종 34년(1707년) 북한 길주군에 세워진 것으로 1905년 러·일 전쟁 중 일제에 의해 약탈당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돼 왔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의병들이 왜군을 격퇴한 기록 등 1500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dlek.
북관대첩비 환국 일정
2003년 초산 스님과 일본의 카끼누마센신 일·한불교복지협회 스님과 반환 협의
2005년(재)법왕청 평화재단 이사장 담화 이존영 산하에 한일불교복지협회(설립)
초대 이사장 초산 엄태종스님
2005년 3월 28일 중국 베이징 평양관에서 남·북 합의서 작성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심상진
한일불교복지협회장 초산 스님, 북관대첩비민족운동중앙회 원민식 의장
한·일 양국 2005년 10월 12일 북관대첩비 인도문에 서명
2005년 10월 20일 북관대첩비 한국으로 반환됨.
2006년 2월 13일 북으로 인도를 하기 위한 남·북 합의서 작성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심상진
한일불교복지협회장 초산 스님, 북관대첩비민족운동중앙회 원민식 의장
2006년 3월 1일 북관대첩비 북한 개성 성균관에서 인도 인수식
2006년 3월 23일 북관대첩비는 오랜 세월 끝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감.
현재 복제비는 국립고궁박물관, 독립기념관, 의정부의 정문부장군묘역, 진주시 가호서원에 세워져 있음.
북관대첩비민족운동중앙회는 구국의 별 정문부 장군의 업적을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재단법인 북관대첩비 민족운동 중앙회
총회장 초산 엄태종
상임의장 원민식
이사장 담화 이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