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법佛法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자리와 모든 순간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일체처 일체시一切處 一切時’란 말 그대로 ‘모든 곳에서, 모든 때에’ 법이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정된 장소나 특정한 시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과 공간 속에서 실천되고 체득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행을 위해 특정한 장소, 예를 들면 사찰이나 수행처를 찾아갑니다. 물론 그러한 장소는 수행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불법은 특정한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디에 있든지 그곳이 곧 도량道場’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집, 일터, 거리, 자연 속 어느 곳이든 마음을 맑히고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한다면 그곳이 바로 도량이 됩니다. 불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있어 ‘적절한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이 순간이 바로 수행의 때이며, 깨달음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허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사람에는 고하高下가 없고, 마음에는 고하高下가 있다."라는 말은 불교의 가르침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불교에서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이는 우리가 가진 신분이나 외형적인 지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우리의 마음 상태와 그것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가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사람을 외형적 조건이나 사회적 위치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존재가 본질적으로 고귀하고, 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불성은 모든 존재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마음에는 높은 경지와 낮은 경지가 있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깨끗하고 평온하며, 자비와 지혜로 가득 찰 때 높은 경지에 있다고 본다. 반대로, 마음이 탐욕, 분노, 무지로 가득 차 있을 때 낮은 경지에 있다고 한다. 이는 불교 수행의 핵심인 '수행修行'과 연결된다. 수행은 마음을 정화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과정입니다. 선禪과 같은 명상이나 팔정도八正道와 같은 실천이 그 예이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불교 경전에서 부처님은 "모든 존재는 깨달음을 얻을
재단법인 일정불교문화재단, 가피암 회주 일정대종사의 법문 3 다섯 가지의 德目에 의해서 반야경에서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 선禪 반야의 여섯 가지를 육도六度、또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보시布施라고 하는 것은 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공無空의 지혜를 반야경般若經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크게는 육백 권에서 작게는 반야심경과 같은 작은 것까지 수많은 경전이 있다. 따라서 그 내용도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반야경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일관된 사상의 근저가 있으며 그것에 바탕을 두고 여러 방면으로 사상思想이 발전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공통점 즉 근저根底의 사상으로서 무無와空의 지혜智慧의 반야般若에 바탕을 두고 여러 가지 반야경이 전개되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에 의해서 잘 설명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무無와 공空의 지혜는 반야심경뿐만 아니라 불교 그 자체의 근본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만약 유럽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유有」의 지혜에 바탕을 두는 그것으로 생각해 왔다고, 한다면 전혀 반대의 관점에 서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발상發想과 그것에 바탕을 두는 행동의 패턴으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