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흰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어둠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 그 새는 머뭇거리지 않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땅의 습기와 안개, 바람의 흔들림을 뒤로하고 오직 빛을 향해 날아갑니다. 이 모습은 곧 수행자의 길이며, 깨어난 자의 모습입니다.
법구경의 말씀에 이르기를, “마라와 그의 군대를 처부순 이는 이 세상을 멀리 벗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마라는 단지 외부의 존재가 아닙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집착, 두려움이 모든 것이 곧 우리 마음속의 마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장애를 두려워하지만, 정작 우리를 묶어두는 것은 내부의 번뇌입니다.
수행이란 멀리 있는 어떤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어둠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단지 빛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밝히고, 한 생각을 바르게 세우는 순간, 마라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흰 새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듯, 수행자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날아오르는 용기’입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는 있지만, 날아오르지 못합니다. 익숙한 삶, 익숙한 고통 속에 머물며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익숙하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어집니다.
깨달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의 선택에서 이루어집니다. 분노할 수 있는 순간에 참는 것, 욕심낼 수 있는 순간에 내려놓는 것, 미워할 수 있는 순간에 이해하려는 것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마라의 군대는 강해 보입니다. 욕망은 달콤하고, 분노는 정당해 보이며, 어리석음은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입니다. 결국 그 끝은 괴로움입니다. 수행자는 이 허상을 꿰뚫어 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멀리 벗어난다는 것은, 몸이 어디로 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집착에서 자유로워지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생사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 그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흰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날개를 펼친 순간, 오직 위를 향해 나아갑니다. 수행자도 그러해야 합니다. 과거의 후회, 미래의 걱정에 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깨어있는 자만이 참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는 모두 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다만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바로 쇠사슬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이미 우리는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날개를 펼쳐야 할 때입니다. 태양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변하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고개를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수행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한 생각을 밝히는 일, 그 한 걸음이 곧 태양을 향한 비상입니다.

오늘 이 순간, 마음속의 마라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에 휘둘리지 말고, 그 위에 서십시오. 그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부부의 싸움이 아니라, 내면의 승리입니다.
흰 새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듯, 깨어난 이는 영혼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갑니다. 그 하늘에는 경계가 없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오직 맑고 고요한 자유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그대는 아직도 땅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아니면 날아오르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비상의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