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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담화풍월, "핵가족 시대, 우리가 다시 묻는 ‘모심’의 의미"

- “미리 준비한 자리에는, 후회가 머물지 않습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효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효를 실천하는 방식이 시대에 맞게 바뀌고 있을 뿐이다. 선산과 대가족의 시대를 지나 핵가족과 1인 가구의 시대에 들어선 오늘, 우리는 다시 묻는다.

 

 

“부모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 “그리고 그 기억을, 어디에 남길 것인가.”

 

사라진 것은 조상이 아니라, ‘자리’다 핵가족화는 가족의 형태만 바꾼 것이 아니다. 조상을 기억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산소는 멀어졌고, 산골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깊지만 남은 이들에게는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만 남긴다. 기제사는 간소해졌고, 아이들은 조부모의 얼굴보다 사진 속 이름을 먼저 배운다.

 

문제는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를 자리가 사라졌다는 데 있다. 불교가 말하는 봉안, 육신이 아니라 인연을 모시다 불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윤회는 인연이 형태를 바꾸어 이어지는 과정이다. 육신은 사대四大로 흩어지지만, 업과 인연은 남아 다시 흐른다.

 

 

그래서 불교에서 봉안은 유골을 보관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연을 잇는 수행이다. 봉안단 앞에서 우리는 부모의 삶을 떠올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 자리는 망자를 붙잡는 곳이 아니라, 산 자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 도량이다.

 

세대가 달라져도, 마음은 같다 부모 세대는 말한다 “자식 고생 안 시키고 싶다.” 자녀 세대는 고민한다 “끝까지 제대로 모실 수 있을까.” 청년 세대는 묻는다 “나는 부모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세대는 다르지만, 질문의 뿌리는 같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의 효는 버티는 효가 아니라 지속되는 효로 옮겨가고 있다.

 

사찰 봉안당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사찰 봉안당은 이 시대의 질문에 조용한 답을 제시한다.

 

- 언제든 찾아뵐 수 있는 자리
- 날씨와 계절에 흔들리지 않는 공간
- 가족의 손이 줄어들어도 끊이지 않는 기도
- 기제사와 천도재가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구조

 

 

특히 사찰은 기도와 예불이 멈추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천도와 왕생은 일회성 의식이 아니라 지속되는 공덕 속에서 이루어진다.

 

‘천년의 뜰’이 보여주는 하나의 선택 천년향화지지로 불리는 벽사초불정사 ‘천년의 뜰’은 봉안을 소유가 아닌 관계의 선택으로 설명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 가운데에는 부부가 함께 와서 조용히 결정하는 이도 있고,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둘러보는 경우도 있으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미리 살펴보는 어르신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다. 서두르지 않지만, 미루지도 않는 선택이라는 점이다.

 

미리 정해두는 것은, 삶을 가볍게 하는 일 마지막 자리를 미리 정해둔다는 것은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은 시간을 더 가볍게 사는 선택이다.

 

부모에게는 존엄한 마무리가 되고, 자녀에게는 후회 없는 효가 되며, 청년에게는 미래의 기억을 준비하는 일이 된다. 오늘의 효는, 내일의 기억이 된다 효는 과거의 미덕이 아니다. 효는 지금도 형태를 바꾸며 살아 있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내일 누군가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시 또 다른 효로 이어진다. 봉안은 끝이 아니다. 기억을 이어가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