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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담화총사 칼럼] “양웅상쟁의 정치, 깨어 있어야 할 시민”

- 두 용이 싸우는 세상, 누가 상처를 입는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양웅상쟁兩雄相爭”,이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맞붙는다는 뜻이다. 실력이 비슷한 강자들끼리의 치열한 대결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의 정치판을 바라보면 이 말보다 정확한 표현이 없다.

 

서로를 향해 “내가 옳다”, “네가 틀렸다”고 외친다. 정책보다 말이 앞서고, 비전보다 공격이 먼저 나온다. 양쪽 모두 스스로를 정의라 부르지만 정작 국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아我를 중심에 둔 싸움, 즉 아집의 충돌이다.

 

부처님께서는 “아집이 깊어질수록 고통은 커진다”고 하셨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승리만을 향한 정치는 결국 모두를 괴롭히는 업을 낳는다.

 

양웅상쟁의 특징은 분명하다. 싸움은 화려하지만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정치판에서 두 용이 싸우는 동안 시장은 흔들리고, 서민의 삶은 불안해지며, 청년은 미래를 잃고, 어르신은 노후를 걱정한다.

 

그러나 싸움의 중심에 선 이들은 그 고통을 직접 겪지 않는다. 말과 권력의 세계에서 승패만 계산할 뿐이다.

 

 

불교는 묻는다.
“이 싸움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싸움은
이미 수행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다.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정치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이 양웅상쟁에 빠져 있다. 회사에서는 부서 간 경쟁이 적대가 되고, 온라인에서는 의견 차이가 혐오로 변한다. 가정에서도, 공동체에서도 이기려는 마음이 관계를 무너뜨린다.

 

양웅상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상대가 강해서가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지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중도를 말씀하셨다. 이기려는 쪽도, 굴복시키려는 쪽도 아닌 함께 살리는 길을 보라고 하셨다.

 

정치가 진정 강해지려면 상대를 쓰러뜨리는 용이 아니라 갈등을 멈추게 하는 용이 필요하다. 목소리를 높이는 리더가 아니라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양웅상쟁의 끝은 항상 공허하다. 이긴 쪽도 상처를 입고, 진 쪽도 분노를 남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국민은 조용히 피로해진다.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두 용의 싸움을 구경만 할 것인가.

 

한마디 법문
“두 용이 싸우는 동안,
밟히는 것은 늘 백성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