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스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수행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자꾸만 번뇌가 올라옵니다. 욕심도 나고, 화도 나고, 비교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이런 마음으로 수행을 해도 되겠습니까?”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스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마당의 신발을 가리키며 물으셨습니다. “저 신발은 왜 밖에 놓아두는 줄 아는가?”
젊은이는 대답했습니다. “흙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흙이 묻는 것이 두려워 신발을 신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한 걸음도 걷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이셨습니다. “마음도 그렇다네.”
오늘의 사회는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말라고 말한다. 조금 부족하면 자격이 없다고 하고, 흠이 보이면 침묵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제가 아직 부족해서요.” “마음이 깨끗해지면 그때 하겠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묻는다. “마음의 티끌이 두렵다 하여 청정한 수행을 포기하겠는가.”
마음에 티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욕심 없는 인간, 분노 없는 삶, 흔들리지 않는 하루가 과연 존재하는가, 수행은 티끌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티끌을 알아차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연꽃은 맑은 물에서 피지 않는다. 진흙탕에서 뿌리를 내리고, 더러운 물을 통과해 가장 맑은 꽃을 올린다. 수행도 그러하다. 번뇌가 있기 때문에 닦는 것이고, 흔들리기 때문에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뉴스 앞에서 분노하고, 비교 속에서 상처받고, 관계 속에서 실망한다. 그때마다 마음은 말한다. “이렇게 혼탁한데, 무슨 수행이냐.”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수행이 필요한 자리다. 화를 느꼈다면 화를 느끼는 나를 바라보는 것, 욕심이 일어났다면욕심을 부정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이미 수행이다.

부처님은 완벽한 사람만을 부르지 않으셨다. 상처 입은 중생, 흔들리는 인간, 길을 잃은 마음을 향해 “그래도 오라”고 하셨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이 흐리다면 수행을 미루지 말자. 티끌이 있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티끌을 끌어안고도 길을 걷겠다는 서원이다.
마음이 깨끗해진 뒤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길 위에서 마음은 서서히 맑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