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지옥 같다", "배가 고파 죽겠다", "짐승 같은 세상", "질투와 분노가 가득하다" 이런 표현들은 결코 문학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중생六道衆生의 삶의 실상입니다.

불교는 세상을 여섯 갈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이 육도는 단순한 내세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심리적 상태와 삶의 국면을 상징합니다.
고통이 극심한 지옥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의 아귀도, 무지와 본능에 휘둘리는 축생도, 분노의 아수라도, 기쁨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인간도, 쾌락에 도취되어 방심하는 천상도, 모두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계십니다.

불교 신앙 가운데 가장 자비로운 존재로 불리는 지장보살은,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대원大願을 세우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외면당한 존재 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살아가는 중생 옆에 계십니다.
그것은 영웅적인 신화가 아니라, 자비가 가장 절실한 곳에 머무는 삶의 태도입니다. 현대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화려한 외형 속에 살고 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지옥처럼 고통받고 있고, 누군가는 허기진 마음으로 절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장보살은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 깊이 들어가 중생의 손을 잡습니다. 형체는 없지만, 우리의 일상 안에도 지장보살은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이 사회에 지장보살이 필요합니다. 고통받는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눈, 어둠 속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는 손, 남이 울 때 함께 가만히 앉아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지장보살입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건 거대한 구호나 선언이 아닙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작고 단단한 다짐, 그것이 세상을 바꿉니다. “지옥이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 그 말은 곧, “당신이 괜찮아질 때까지, 나는 여기에 있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지켜줄 수도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바로 지장보살의 목소리입니다.
끝으로 이 법문은 지장보살의 가르침과 『지장본원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삶 속의 연민과 책임을 되새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