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스님의 이야기(4편)

  • 등록 2025.07.17 0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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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장의 옥함, 전생의 예언이 열리다
전생의 태몽에서 예고된 ‘삼장전인’, 그 예언이 현실이 되는 순간. 삼장법사 인가를 받는 역사적 장면의 문을 여는 순간입니다.



- 붕새의 날갯짓, 세계를 품다
불국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 포교 여정의 시작. 한국불교가 세계로 비상하는 대서사의 출발점으로, 일붕 스님의 결단과 비전을 상징합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계일화』 제4편을 펴내며... 글 / 담화총사 『세계일화世界一化』는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정리한 연재 기록입니다.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맑고 깊은 행적, 그리고 한 시대를 초월한 포교와 수행의 여정은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 한국불교의 정수이자 세계불교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번 제4편에서는 삼장법사로서의 인가를 받던 역사적 순간부터, 세계를 향해 붕새처럼 비상하던 미국 포교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따라갑니다.

 

이 길 위에는 ‘불법은 국경이 없고, 자비는 인류 모두를 향해야 한다’는 일붕 큰스님의 신념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일화』는 이제 다시, 그 위대한 발걸음을 따라 여러분과 함께 걷고자 합니다. 진리의 등불은 멈추지 않고, 자비의 바람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이제 제4편의 문을 엽니다.

 

 

제11장. 삼장의 옥함을 열다...최초의 삼장법사

 

11-1. 경·율·논에 통달한 자, 삼장법사의 칭호를 받다

1962년 5월 9일, 영국을 떠나 홍콩을 거쳐 자유중국에 도착한 일붕 스님은 9일간의 불교 강연 일정을 소화하며 대중들과 교감을 나누었다. 강연이 마무리된 어느 날, 중국불교총회 이사장이자 삼장학원 원장인 백성법사는 일붕 스님에게 불교 최고의 학위인 ‘삼장법사三藏法師’ 칭호를 수여하였다. 이는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자, 곧 경經·율律·논論에 통달한 수행자에게만 주어지는 존칭이었다.

 

어머니의 태몽 속에서 전해진 옥구슬, 그 안에 새겨진 ‘삼장전인三藏傳人’의 예언이 50년 만에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일붕 스님은 이 영예를 그 어떤 박사학위보다도 크게 여겼다. 그것은 단지 학문적 칭호가 아니라, 불법의 정수를 지니고 전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불가의 전통이자 사명, 곧 스님의 인생 전체를 증명하는 법의 인장이었다.

 

 

11-2. 어린이에게 전한 불법, 마음속 평등의 씨앗
그는 이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학문을 전수하는 동시에, 경주 불국사의 주지로도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문학작품도 남겼다. 「석굴암과 김대성」, 「삼봉」, 「금색의 종」 등은 그가 신문에 연재한 이야기를 모아 엮은 창작 동화로, 당시 동화가 드물던 한국 어린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의 가르침은 어린이에게조차 깊이를 선사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도 “사람의 머리는 모두 같고 귀하다”는 아쇼카왕의 일화를 전하며, 인간 존엄과 평등의 불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 스님의 설화 속 말 한마디가, 어린이들에게는 인생을 여는 첫 자비의 종소리로 울려 퍼졌다.

 

 

제12장. 세계를 향한 붕새의 날갯짓

 

12-1. 불모지 미국에서 첫 선원을 열다
1964년, 일붕 스님은 경주 불국사 주지와 교수직을 내려놓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붕 스님은 한국인 승려로서 최초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주인공이었다. 이는 단지 하나의 여정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세계 진출을 연 첫 장이었다. 그 뒤를 이어 숭산 스님이 두 번째로 미국에 진출하며, 두 큰스님의 발걸음은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이끈 쌍두마차가 되었다.

일붕 그가 본 세계의 흐름은 이미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중심을 옮기고 있었다. 문명과 정신의 중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수행자로서의 사명 또한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이정표였다.

 

“강대국을 이해하지 못하면, 약소국은 늘 종속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만국공통의 진리다. 이제 그 진리를 세계의 중심에서 외쳐야 한다.”

 

콜롬비아대학의 초청으로 출국한 그는 이후 캘리포니아대학교와 하와이대학교에서도 강의하며, 동양학·비교종교학·불교철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사명은 교단 강의실이 아닌, 미국 땅에 한국불교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 한쪽 방을 선원으로 삼고, 직접 나무판에 붓으로 '일붕선원' 간판을 써 붙였다. 전등 불빛도 없이 번쩍이는 네온사인 사이, 그 검은 먹글씨는 이국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일붕 선원은 한국인 최초의 미국 선방이 되었고, 그의 첫 제자인 완델 와그너는 '도심(道心)'이라는 법명을 받고 비구승이 되었다.

 

 

12-2. 22만 평의 기적, 한국불교를 세계의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은 하나둘 늘어났다. '법인', '법심', '도향', '도성'... 미국 불교 전역을 이끄는 수좌들이었다. 이들은 이후 미시간,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전역에 한국불교를 전파하며, 일붕 스님의 불법정신을 이어갔다.

 

그 열정은 단지 사람을 얻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의 신행을 존경한 미국인 스탠 피셔와 헨리 씨는 각각 11만 평씩, 총 22만 평의 땅을 기증했다. 그곳에 세계중앙선원이 세워지고, 세계승가대학이 인가되었으며, 일붕 스님은 비로소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실현하는 구체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템플대학교에서 「조당집 연구」로 한국 승려 최초의 해외 정식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 논문은 서양 불교학계에서 한국선禪의 교학을 체계화한 최초의 연구로 평가되었다. 유럽 불교계는 『조당집』의 출간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인식했다.

 

늘 흰 고무신에 승복을 입고, 염주를 걸친 채 미국 땅을 누비던 일붕 스님. 그는 신자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으로 절했고, 제자들에게는 한국 선禪의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그 모습 하나하나가 세계 속에서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가 심은 씨앗은 하나의 나무가 되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는 단지 한국 불교의 확산이 아니라, 자비와 지혜, 그리고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세계 속에 뿌리내린 증거였다. 일붕 스님이 세운 길 위에서,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깨달음과 연대의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하 기자 haya9004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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